고린도전서 2장 4절 - 리고니어 미니스트리
마태복음 18:20
2022년 09월 08일
고린도전서 13:13
2022년 09월 15일
마태복음 18:20
2022년 09월 08일
고린도전서 13:13
2022년 09월 15일

고린도전서 2장 4절

편집자 노트: 이 글은 테이블톡 매거진 시리즈: “그 구절이 정말 무엇을 의미하나요?”의 여섯 번째 글입니다.

사역은 방식이 중요하다. 고린도전서 2장 4절은 바울이 전하는 메시지에 부합한 그의 사역 방식을 이야기해준다. 바울이 전하려는 메시지는 십자가와 부활의 그리스도였다(고전 15:1~4). 그렇기에 그의 사역 방식 역시 가식적이거나 자기 홍보가  아닌, 십자가를 닮은 사역이었다. 설교자의 말씀 전달 방식과 설교자 자신의 삶의 모습은 하나님께서 그에게 맡기신 말씀의 의미를 잘 표현할 수도 있고, 반대로 삼천포로 빠지게 할 수도 있다. 

이것이 “지혜의 권하는 말”에 의지하지 않는 바울 사역의 논리이다. 헬라-로마 제국의 다른 지역처럼 고린도인들 역시 그런 지혜가 큰 성공과 위상을 이루는 능력이라 믿었다. 이 문화적인 지혜는 당시의 유명 웅변가나 지식인들에게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공허한 메시지를 가지고도 자신의 추종자를 양산하기 위해 어떻게 말해야 하는지 잘 알고 있던 자들이었다. 

그렇기에 바울이 “지혜의 권하는 말”을 사용하지 않겠다고 할 때는 그가 설교와 교육에 대하여 무심히 접근하겠다는 의미는 아니다. 말의 중요성을 무시하겠다는 의미도 아니다(딤후 2:15). 누구보다 똑똑했지만, 메시지의 전달만큼은 자신의 자각만을 의존하지 않기로 한 바울이었다. 게다가 그가 부주의하고 깊은 통찰 없이 설교와 가르침을 전한 것도 아니다(행 18:19). 바울은 그저 자신의 연약함을 숨기지 않았고, 그로 인해 성령의 능력이 그가 전하는 말씀 가운데 나타났다(고후 4:7, 12:9~10). 

고린도전서 2장 1~4절은, 가장 강력한 말씀은 그리스도 중심적이고 성령 의존적이며 십자가를 닮은 방식으로 전해지는 것임을 일깨워주고 있다.

바울의 서신서에 담긴 문맥은 본문의 중요성을 더욱 분명히 시사한다. 고린도 교회는 지도자들을 두고 나뉘어 있었다(고전 1:12-13, 3,3-5). 신학적 불일치가 갈등의 이유가 아닌 것은 거의 확실하다. 사도 바울과 베드로는 그리스도가 가르치신 동일한 교리를 교회에 가르쳤다(엡 2:20). 게다가 바울은 언제나 교리적 분쟁을 심각하게 우려했다(롬 16:17~18). 그렇기에 고린도 교회의 분열은 지도자들에 대한 충성심 경쟁에서 야기된 것이 거의 틀림없다. 특별히, 아볼로와 바울이 그 분열의 중심이었다(고전 4:6). 아볼로는 타고난 연설가였다(행18:24). 고린도 교회는 바울을 아볼로처럼 말에 재능이 있는 사람으로 여기지 않았다(고후 10:10). 문화적 사고에 잠식된 고린도 성도들은 바울의 “연약함과 두려움”, 그리고 “고난”이 주변 이웃들의 감정에 호소력이 가지지 못할 것을 염려했다. 그래서 바울은 자신의 연약함을 인정하고 고난을 견뎌낸 채, 자기를 내세우지 않는 사역 방식으로, 자신이 아닌 전하려는 메시지가 드러나길 원했다. 이 메시지는 바로 그리스도시요, 그분의 십자가이며, 악하고 연약한 죄인을 향한 구원이었다. 

이러한 문맥적 이해 속에서 우리는 고린도전서 2장 4절이 복음 사역에 반(反)지성적, 무지(無知)적으로 접근하고 있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고린도전서 2장 4절에서 가리키는 바울의 말은 성경 다른 곳에서 그가 실천하고 가르쳤던 것들, 성경에 대하여 변론하고 설득하는 일(행 17:16-31), 영적 성장을 위해 마음을 지키는 일(롬12:2)과 절대 상반되지 않는다. 바울이 우리에게 가르치는 바는 말씀 사역자들이 그들이 속한 문화적 특성 속에서 그리스도가 맡기신 말씀 사역에 있어 어디에 중점을 두고, 어떻게 그 말씀이 성령의 능력으로 효과 있게 전달될 수 있는지 의식 있는 판단을 내려야 한다는 것이다. 

성공을 위해 문화적 이치를 따라야 한다는 끊임없는 압박은 사역자들과 교회에 늘 있어왔다. 바울은 단순히 복음의 시장성을 높이려고 “지혜의 권하는 말”을 취하지 않도록 조심하였다. 대신 그리스도의 영으로 능력 입은 선포를 우선시하며 신뢰했다. 그리고 그 선포는 “이 사역은 나에 대한 것이 아니다”(고전 1:31; 2:5)라고 고백하는 주의 종 바울을 통해 나타난다.

설교자의 행동 하나하나는 중요하다. 그의 걸음걸이 하나조차 청중들로 하여금 증거한 말씀을 저버리게 할 수도 있고, 진정성을 전할 수도 있다(고후 4:2, 7, 딤후2:21). 설교자의 강단을 그저 자신의 지식, 재능, 성품을 높이는 데 사용할 수도 있고, 아니면 하나님이 의도하신 대로 그리스도를 높이도록 사용할 수도 있다. 신앙의 지도자들과 설교자들은 직속적으로 그들이 어떻게 사역할 것인지 의식 있는 결정을 내려야 한다. 그들이 세간의 지혜에 순응하거나 유명인을 추종할 수도 있고, 그들이 섬기는 구원자의 십자가 형상을 붙잡으며 주님께서 허락하신 방식에 의지하여 사역할 수도 있다. 고린도전서 2장 1~4절은 가장 강력한 말씀은 그리스도 중심적이고 성령 의존적이며 십자가를 닮은 방식으로 전해지는 것임을 일깨워주고 있다.

이 글은 원래 테이블톡 매거진에 게재되었습니다.

존 커리
존 커리
필라델피아 웨스트민스터 신학교의 실천신학 교수 겸 학과장이자, 정통장로교회(Orthodox Presbyterian Church)의 사역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