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찬식에 나타난 연합으로의 부르심
2024년 07월 26일아내와 이타적으로 사는 삶
2024년 08월 02일용서받을 수 없는 죄
편집자 노트: 이 글은 테이블톡 매거진 시리즈: “기독교와 자유주의”의 열세 번째 글입니다.
요한복음 6장에서 예수님의 제자들은 “이 말씀은 어렵도다”라며 수군거린다. 목사님들이 자주 받는 질문 중에 “용서받을 수 없는 죄가 무엇입니까?”라는 질문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이 질문에 대한 예수님의 대답을 기억해야 한다.
“사람에 대한 모든 죄와 모독은 사하심을 얻되 성령을 모독하는 것은 사하심을 얻지 못하겠고 또 누구든지 말로 인자를 거역하면 사하심을 얻되 누구든지 말로 성령을 거역하면 … 사하심을 얻지 못하리라” (마 12:31~32)
이것은 용서에 관한 놀라운 말씀이다. 얼마나 믿기 힘든 말씀인가. 위대하고 영화로우신 하나님, 권세와 능력이 있으시며, 그분의 나라가 대대에 이르도록 하시는 하나님께서 죄인들을 용서하신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우리를 위해 아버지께 간구하시는 것을 듣게 된다.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눅 23:34)
그러나 이 말씀에는 모순처럼 보이는 것이 있다. “사람에 대한 모든 죄와 모독은 사하심을 얻되 성령을 모독하는 것은 사하심을 얻지 못하겠고…” 이 역설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D.A. 카슨은 첫 번째 진술을 외부적으로 받아들일 것을 제안한다. 용서받지 못할 죄는 없다. 성경은 이를 보여준다. 다윗의 간음, 살인, 속임수, 위선을 생각해 보라. 하지만 그는 용서받았다. 베드로는 그리스도를 세 번 부인했고, 바울은 교회를 핍박했다. 고린도전서 6장에 언급된 음행하는 자나, 우상 숭배하는 자나, 간음하는 자나, 탐색하는 자나, 남색하는 자나, 도적이나, 탐욕을 부리는 자나, 술 취하는 자나, 모욕하는 자나, 속여 빼앗는 자를 생각해 보라. 그들 또한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용서를 받는다. 외부적으로 보면 용서받지 못할 죄는 없다.
하지만 내면적으로 성령님을 밀어내고, 자신의 죄를 고백하기를 거부하고, 그리스도의 자비에 자신을 맡기지 않는다면, 그 죄는 용서받을 수 없다. 이에 대해 용서 받을 길은 없다. 만일 우리가 진리를 듣고 성령님께서 그 진리를 확증해 주셨는데도, 마음을 강퍅케 하고 회개하지 아니한다면 용서받을 길은 없다. 용서받을 수 있는 다른 방법은 주시지 않았다.
성경은, 성령님께서 모든 저항을 극복하시고, 하나님의 백성이 회개하고 믿음으로 나오도록 하신다고 가르친다. 이 거부할 수 없는 불가항력적 은혜 없이는 누구도 그리스도께 나아오지 못한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죄가 드러났을 때 거부할 수 있다는 것도 사실이다. 로마서 1장 말씀처럼 진리는 억압될 수 있다. 우리는 성령의 확신을 밀어낼 수 있다. 진리는 불의에 의해 무시될 수 있다. 이것이 마태복음 12장에서 그리스도께서 주신 경고이다.
여기에는 약속과 경고가 있다. 모든 종류의 죄가 용서될 것이라는 약속이 있고, 죄를 깨닫게 하실 때 결코 저항하지 말라는 경고가 있다. 이 말씀은 용서받을 수 없는 사람은 없다는 좋은 소식이지만, 하나님의 말씀에 마음을 강퍅하게 하고 성령님의 역사를 밀어낸다면 우리는 회개하지 않는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사야 55장에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에 찾으라”(6절)는 말씀을 기억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