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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의 은사

편집자 노트: 이 글은 테이블톡 매거진 시리즈: “성령”의 네 번째 글입니다.

우리 아들들이 어렸을 때, 아이들은 크리스마스에 아내와 내가 준 선물들을 매우 열심히 뜯어보곤 했다. 그러다가 장난감이나 게임기를 받으면 무척 기뻐했고, 양말이나 셔츠를 받으면 실망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아이들의 반응을 보면, 그들이 ‘흥미로운’ 선물을 과대평가하고 ‘실용적인’ 선물을 과소평가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안타깝게도, 신앙을 고백하는 많은 신자 역시 성령의 은사에 비슷한 태도를 취한다. 그들은 기적적인 성령의 은사(예컨대 방언, 예언, 치유)를 과대평가하고, 보편적인 성령의 은사(예컨대 구원과 성화의 열매)를 과소평가한다. 기적적인 영적 은사에 대한 잘못된 견해는 대개 그 은사들의 구속사적 목적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데서 비롯된다. 우리가 성령의 비범한 은사와 보편적인 은사에 관한 성경의 가르침을 이해하게 되면, 오늘날 교회에서 계속 나타나는 더 큰 은사를 올바로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신약 성경에는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에게 은혜로 주신 다양한 영적 은사들이 제시되어 있다. 무엇보다도 성경은 구원이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말한다(롬 6:23; 엡 2:8 참고). 우리는 본질상 죄로 인해 죽은 자들이었으며(엡 2:1–3 참고), 영생을 얻기 위해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따라서 구원은 하나님의 선물이다. 이와 관련하여, 그리스도는 자신을 “하나님의 선물”로 일컬으신다. 그분은 우물 곁에서 만난 여인에게 “네가 만일 하나님의 선물과 또 네게 물 좀 달라 하는 이가 누구인 줄 알았더라면 네가 그에게 구하였을 것이요 그가 생수를 네게 주었으리라”(요 4:10)라고 말씀하신다. 예수님께서 자신을 가리켜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하신 것은, 그분이 아무 자격도, 공로도 없는 죄인들을 구속하기 위해 세상에 오신, 성육신한 하나님의 아들이시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께서 승천하고 오순절에 성령을 보내신 후, 사도들은 거듭해 성령을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부른다(행 8:20; 2:38; 10:45 참고). 성령은 그리스도가 자신의 피로 사신 백성에게 주시는 선물이다(요 7:37 참고). 성령은 그리스도가 택함 받은 자들을 위해 확보하신 구속을 적용하신다. 성령은 그리스도와 신자가 참된 영적 연합을 이루게 하심으로써, 예수님께서 친히 구속하신 그들에게 중생과 칭의, 양자 됨, 성화와 영화의 근원이 되게 하신다(고전 1:30 참고). 성령은 성자와 함께 일하신다. 성령은 그리스도가 죽음으로 대속하신 모든 자들이 죄를 깨닫게 하며, 그들을 거듭나게 하고 그들 안에 거하며, 그들을 의롭다 하고 거룩하게 하며, 양자 삼고 인치며, 궁극적으로 영화롭게 하신다. 또한 성령은 그리스도와 연합된 자들이 삶 가운데 열매를 맺게 하신다(갈 5:22 참고). 그리고 그리스도는 성령을 통해 자신의 사랑과 기쁨, 평안을 자기 백성에게 나누어 주신다(요 15:9-11; 17:13; 14:27 참고).

성령의 선물에 관한 신약 성경의 가르침은 성령의 은사들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히 2:4 참고). 바울은 이것을 “신령한 은사”라고 부른다(롬 1:11; 고전 12:1; 14:1; 엡 4:8 참고). 승천하신 그리스도는 성령을 통해 이런 은사들을 자기 백성에게 전달하신다. 예수님은 자기 안에 계신 성령의 능력을 나타내심으로써, 자신의 메시아적 사역이 참됨을 입증하는 기적들을 행하셨다. 또한 그리스도는 승천하면서, 자신 안에서 놀라운 역사와 기사들을 행하게 하신 바로 그 성령을 보내, 사도적 교회가 복음에 나타난 메시아적 메시지를 열방에 전하도록 하셨다. 따라서 비범한 은사들은 승리하고 승천하신 그리스도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싱클레어 퍼거슨(Sinclair Ferguson)은 이 점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그리스도의 승천과 성령의 강림 사이에 나타나는 연관성은, 성령이라는 선물과 그분의 은사들이 그리스도께서 승리하고 보좌에 오르셨음을 드러내는 외적 표지라는 것을 시사한다.”

이런 은사에 관한 사도적 가르침이 나타나는 신약의 주요 본문으로는, 로마서 12장 6–8절, 고린도전서 12장 8–11절과 28절, 에베소서 4장 11절, 베드로전서 4장 10,11절이 있다. 은사의 목록을 간단히 비교해 보면, 그것들이 모두 사도와 선지자들의 기초적인 사역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었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고후 12:11–13; 엡 2:20; 3:5 참고). 퍼거슨은 이에 대해 다시 한 번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 다양한 은사들을 취사선택하여 분류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며, 어쩌면 그렇게 시도하는 것 자체가 잘못된 일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기본적인 구조는 분명하다. 사도와 선지자를 통해 주어지는 계시의 말씀이 기초가 되며(엡 2:20 참고), 거기서부터 그 밖의 모든 것이 규정되고 흘러나온다.

에베소서에서 첫 번째로 나오는 은사 목록에는 ‘말씀의 은사’와 관련해 그리스도께서 세우신 직분들이 제시되어 있다. 바울은 그리스도가 주신 은사로 “사도, 선지자, 복음 전하는 자, 목사와 교사”(엡 4:11)를 언급한다. 말씀 사역이 하나님께서 자신의 나라를 확장하고 자신의 백성을 세우시는 주된 수단이므로, 바울은 ‘말씀의 은사’와 관련된 여러 직분들을 나열한다. 요컨대 하나님께서 말씀 사역자로 부르신 이들은 자기 교회에 주신 그리스도의 선물로 받아들여져야 한다. 사도와 선지자의 직분은 기초를 세우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이 목록의 맨 앞에 나온다. 하나님은 이 직분자들을 세워 새 언약 교회의 토대를 닦고, 열방에 복음을 전하게 하셨다(엡 2:20; 살전 2:13; 벧후 3:15,16 참고). 그리하여 그들로 하여금 그리스도의 비밀에 관한 완전한 계시를 밝히 드러내게 하셨다(엡 3:4-6 참고). 이런 직분들은 성경의 정경이 완성될 때까지만 필요했다(엡 2:20; 3:5 참고). 그리고 이제 교회는 신구약 성경 안에서 완전히 계시된 하나님의 말씀(즉, 완성된 사도적 교리)을 소유하고 있다.

사도 시대에 하나님은 보편적 은사와 비범한 영적 은사를 모두 주셨다. 보편적 은사는 모든 신자에게 공통적으로 주어지는 은사로, 죄에 대한 깨달음과 회심, 성화, 구원의 확신이 포함된다. 비범한 은사는 구속사 가운데 특정한 목적을 위해 특정 시기에 하나님께서 개인에게 나누어 주신 초자연적인 은사들이다. 조나단 에드워즈(Jonathan Edwards)는 이 둘을 다음과 같이 구분해 설명한다.

성령의 비범한 은사는 기적적인 은사와 같은 것으로, 예언의 은사와 기적을 행하는 은사, 그 밖에 사도가 언급한 다른 은사들이 이에 해당한다……이런 것들을 성령의 비범한 은사라고 부르는 것은, 그것들이 특별한 경우에만 부여되었기 때문이다. 즉, 그것은 성경의 정경이 완성되기 전에 하나님의 마음과 뜻을 계시하기 위해 선지자와 사도들에게 주어졌다……그러나 성경의 정경이 완성되고 그리스도의 교회가 온전히 기초를 세우고 확립된 후에는, 그런 비범한 은사들이 중단되었다. 성령의 보편적인 은사는 모든 시대에 걸쳐 하나님의 교회에 계속 주어지는 것으로, 죄에 대한 깨달음과 회심에 관한 은사들, 그리고 성도들을 거룩함과 위로 가운데 세워 가는 일에 관한 은사들이다.

예언, 방언, 치유와 같은 비범한(기적적인) 은사는 사도들이 여러 민족들 가운데 선포한 신적 메시지가 참되다는 사실을 확증했다(행 1:8 참고). 또한 이런 은사는 그리스도에 관한 사도적 계시를 확증했다. 방언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나라를 옛 언약의 이스라엘에서 열방으로 옮기고 계신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표적 은사’였다. 따라서 방언은 복음의 복이 열방에 임했음을 증언했다. 팔머 로버트슨(O. Palmer Robertson)은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오순절에 방언으로 말한 것은 이스라엘에게 언약적 저주의 표적이 되었다. 그것은 이제 하나님께서 온 세상의 다른 민족들과 구별해 그들에게만 독점적으로 말씀하지 않으실 것임을 보여 주었다. 그러나 동시에 오순절의 방언은 이스라엘을 포함한 온 세상의 모든 민족에게 임한 하나님의 큰 복을 보여 주는 표적이기도 했다. 즉, 방언은 언약의 복이 세상 모든 민족에게로 확장되었음을 드러내는 표적이었다.

또 다른 확증적 표적 은사로 기적적인 치유가 있다. 이것은 복음의 부활 능력을 증언했다. 그리고 복음이 땅 끝까지 전파되고, 완성된 신구약 계시의 기초 위에 교회가 세워지자, 이런 비범한 표적 은사는 중단되었다. 마찬가지로 사도들이 그리스도에 관한 기록된 계시를 완성하고 성경의 정경이 확정되자, 예언도 더는 필요 없어졌다.

고린도전서 12-14장은 신약 성경에서 영적 은사를 가장 길게 다루는 본문이다. 여기서 사도 바울은 교회에 널리 퍼져 있던 은사의 오용 문제를 다룬다. 교회 구성원들은 더 큰 은사보다 작은 은사를 높이 평가했고, 또 어떤 이들은 은사를 무질서하거나 자기를 과시하는 방식으로 사용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주신 은사의 목적을 올바로 이해하지 못했다. 바울은 방언과 예언의 은사의 중요성을 비교한 후, 비범한 은사의 한시적인 기능과 보편적인 은사의 지속적인 작용을 대조한다. 이를 통해, 바울은 독자들이 성령의 보편적 은사가 비범한 은사보다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닫도록 돕고자 했다(고전 12:31 참고).

바울은 고린도전서 13장 8-13절에서 세 가지 비범한 은사와 세 가지 보편적인 은사(믿음, 소망, 사랑)를 대조한다. 그러고는 성령의 비범한 은사는 결국 사라지겠지만 보편적인 은사는 항상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8,13절 참고). 그는 비범한 은사는 폐해질 것이나, 보편적인 은사는 세상 끝 날까지 계속될 것이라고 말한다. 하나님의 기록된 계시가 완성되면서 비범한 은사의 필요성은 사라졌지만, 보편적 은사의 필요성은 복음 시대에도 줄곧 남아 있다(13절 참고). 한편 믿음과 소망은 시간 속에서 비범한 은사보다 오래 지속되겠지만, 영원 속에서는 사랑보다 오래 지속되지 않을 것이다. 믿음과 소망은 그것이 완성될 때까지 신자들의 삶에서 계속 역사할 것이다. 그러나 사랑은 영원토록 계속될 것이므로, 그것이 가장 위대한 은사이다. “사랑은 언제까지나 떨어지지 아니하되”(8절).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때, 믿음은 보이는 실체로 변하고, 소망도 이루어지겠지만(롬 8:24 참고), 사랑은 신자들이 영원토록 하나님 및 서로와 교제하는 가운데 주된 은혜로 남을 것이다. 존 칼빈(John Calvin)은 이런 바울의 가르침을 바탕으로 다음과 같이 결론 내린다.

우리는 결코 끝나지 않을 탁월함을 간절히 바라야 한다. 따라서 결국 사라질 한시적인 은사보다 사랑을 우선시해야만 한다. 예언도 끝이 있고, 방언도 그치며, 지식도 사라질 것이다. 그러나 다른 은사들이 사라지더라도 사랑은 살아남을 것이므로, 사랑이 그것들보다 더 탁월하다.

심지어 사도 시대에 교회에서 성령의 비범한 은사가 여전히 나타나던 때에도 바울의 메시지는 단순했다. 그는 사랑이 동반되지 않으면 다른 영적 은사를 발휘하는 것이 아무 유익이 없다고 가르친다(고전 13:1–4 참고). 이 원칙은 사도 시대의 신자들은 물론,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변함없이 참되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어떤 은사를 주셨든, 언제나 사랑이 그 은사들을 이끄는 주된 동기가 되어야 한다.

구속사에서 성령의 비범한 은사는 중단되었으나, 하나님은 여전히 자기 백성에게 가르침과 설교, 자비와 환대, 관용, 다스림 등 다양한 은사를 주셔서 교회 안에서 섬기게 하신다. 하나님은 자기 몸의 지체들에게 이 은사들을 다양하게 나누어 주셔서, 그들이 받은 은사를 사용하여 사랑 안에서 한 몸 된 다른 이들을 세워 가게끔 하신다(롬 12:6–8; 엡 4:11–16 참고). 사랑 안에서 은사를 사용할 때, 그리스도의 몸 된 지체들이 하나로 연합하고 세워진다.

승천하신 그리스도는 자신의 백성에게 성령이라는 선물과 더불어 성령의 은사를 주셨다. 성령의 비범한 은사는 사도의 메시지가 하나님에게서 나왔음을 확증하는 목적을 수행했다. 그것들은 성경의 계시가 완성되어 가는 과정과 새 언약 교회의 기초가 세워지는 데에 함께하며 기여했다. 그래서 그것들은 성경의 정경이 완성되자 중단되었다. 반면 성령의 보편적 은사는 구속받은 자들 안에서 이루어지는 그분의 구원 사역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역사이다. 성령은 신자들의 삶을 거룩하게 하시고, 그 가운데 열매를 맺게 하신다. 비범한 은사는 사도 시대에만 나타났지만, 보편적 은사는 세상 끝 날까지 이어진다. 사도 시대에 신자들이 영적 은사를 행사할 때 사랑이 지표가 되었던 것처럼, 오늘날에도 하나님의 백성을 세우기 위해 어떤 은사를 행사하든 사랑이 중심 원리가 되어야 한다.


이 글은 원래 리고니어 미니스트리 블로그에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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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콜라스 뱃지그 목사(Rev. Nicholas T. Batzig)는 사우스캐롤라이나주의 찰스턴에 있는 크릭 장로교회(Church Creek PCA)의 담임 목사이며, 리고니어 미니스트리의 협동 편집인이다. 뱃지그 목사는 그리스도께 기대어(Feeding on Christ)라는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