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개혁주의 구원론은 왜 중요한가
2026년 04월 02일
기독교 구원론이 직면한 현대의 도전들
2026년 04월 02일첫 번째 논쟁: 아우구스티누스 대 펠라기우스
편집자 노트: 이 글은 테이블톡 매거진 시리즈: “기독교 구원론”의 세 번째 글입니다.
구원 교리와 관련하여, 초대 교회에서 가장 중대했던 논쟁은 펠라기우스 논쟁이었다. 5세기에 일어난 이 논쟁의 결과는 그 이후로 이 주제에 관한 모든 논쟁의 향방을 결정했으며, 16세기 종교 개혁 당시의 구원론 논쟁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펠라기우스 논쟁의 한쪽에는 펠라기우스, 켈레스티우스, 에클라눔의 율리아누스 같은 인물들이 있었다. 그리고 반대편에는 아우구스티누스와 히에로니무스 같은 인물들이 있었다. 논쟁의 후기에 요한 카시아누스는 훗날 반(半)펠라기우스주의로 불리게 된 입장을 취하기도 했으나, 여기서는 초기 핵심 인물들의 가장 중요한 가르침에 집중하겠다.
펠라기우스는 누구인가
펠라기우스는 영국 출신의 수도사였다. 펠라기우스 논쟁의 배경을 이해하려면, 수도원주의에 관해 어느 정도 이해해야 한다. 3세기에 시작된 기독교 금욕주의 운동은 이후 수도원주의로 발전해 갔다. 수도사들은 구원에 이르는 데 도움을 얻고자, 개인적으로나 공동체적으로 엄격한 금욕 생활을 고수했다. 금욕주의는 수도사가 하나님과 연합되기 위해 육체적 욕구를 스스로 절제할 수 있도록 돕는 여러 가지 실천 사항을 담고 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수도원의 관행을 전적으로 거부하지는 않았으나, 유명한 그의 저서 『고백록』 제10권에서 오늘날 널리 알려진 기도를 남겼다. “주께서 명령하시는 바를 주소서. 그리고 주께서 원하시는 바를 명령하소서.” 즉, 아우구스티누스는 하나님께 그분의 명령을 이행할 능력을 달라고 간구했다. 반면 펠라기우스는 게으른 수도사들이 이런 기도를 구실 삼아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함으로써, 엄격한 자기 절제를 강조하는 수도원의 생활 방식 전체를 무너뜨린다고 믿었다. “그것은 하나님 탓이다. 그분께서 내가 순종할 수 있도록 은혜를 베풀지 않으셨다”라고 핑계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펠라기우스는 아우구스티누스의 견해를 거부했다.
펠라기우스의 원죄 부정
이 논쟁의 뿌리를 이해하려면, 펠라기우스(그리고 켈레스티우스)가 주장한 몇 가지 기본적인 가르침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먼저, 가장 중요한 사실은 펠라기우스가 원죄라는 개념 자체를 부정했다는 것이다. 펠라기우스는 오랫동안 마니교도들과 논쟁을 벌였다. 마니교도들은 인간이 물질적인 몸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본성상 악하다고 주장했다. 이에 맞서 펠라기우스는 인간이 하나님께 지음 받았으므로 본성상 선하다고 주장했다.
한편 아우구스티누스와 같은 교사들은 인간이 선하게 창조되었으나 아담의 타락으로 인해 부패하게 되었다고 가르쳤는데, 펠라기우스는 그것이 마니교의 주장과 지나치게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이에 대해 펠라기우스는 아담의 죄가 아담 한 사람에게만 영향을 미쳤다고 주장했다. 펠라기우스에 따르면, 우리가 죄를 짓는 것은 아담을 모방하기 때문이지, 우리의 본성이 부패했기 때문은 아니다. 그는, 자녀들이 부모의 습관이나 말투를 자연스럽게 배우는 것처럼, 우리가 아담의 자손으로서 그를 모방해 죄를 짓는 습관을 익힌다고 말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죄의 습관이 억양처럼 몸에 배는 것이다.
펠라기우스의 독특한 은혜 이해
펠라기우스는 자신의 견해가 구원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배제한다는 사실을 부인하지만, 은혜에 대한 그의 견해는 로마 가톨릭이든 개신교든 다른 어떤 은혜 교리와도 매우 달라서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다.
펠라기우스에 따르면, 첫째,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의 계시는 은혜로운 선물이다. 하나님께는 우리에게 율법을 주실 의무가 없다. 둘째, 예수님은 은혜로운 선물이다. 이제 우리에게는 본받을 새 아담이 생겼다. 우리가 예수님을 본받아 점점 순종의 새로운 습관을 형성해 가고 올바르게 선택하기만 한다면, 그리스도께서 죄가 없으셨던 것처럼 우리도 죄 없는 상태에 이를 수 있다. 셋째, 우리에게 주어진 인간 본성 자체가 은혜로운 선물이다. 이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점이다. 우리는 창조해 달라고 요청한 적이 없다. 우리의 본성에는 선이나 악을 선택할 수 있는 능력이 포함되어 있다. 그 능력은 우리가 획득하거나 자격이 있어서 받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이다. 다시 말해, 하나님은 우리가 아담이 아니라 예수님을 본받기로 선택할 수 있도록 자유 의지를 은혜로 주셨다. 이처럼 펠라기우스조차 구원이 은혜로 말미암는다는 사실을 믿는다고 주장한다.
아우구스티누스의 반론
아우구스티누스는 펠라기우스가 인간이 처한 문제의 본질을 조금도 이해하지 못했으며, 그 결과 해결책 역시 전혀 파악하지 못했다고 지적한다. 펠라기우스는 아담의 타락으로 인한 원죄와 인간 본성의 부패를 부정함으로써, 결코 은혜라 할 수 없는 은혜 교리를 만들어 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아담의 타락 이전과 이후의 인류 사이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고 강조한다. 또한 아담의 부패한 본성이 그의 모든 후손에게 전해진다고 주장한다. 아우구스티누스에게 은혜란, 자격 없는 죄인들에게 주어지는 선물이다.
한편 그가 발전시킨 은혜 교리가 오늘날 로마 가톨릭교회를 특징짓는 중세의 교회-성사적 구원 체계를 형성하는 데 기여했다는 점을 이해하는 것도 중요하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은, 펠라기우스 논쟁의 핵심이 원죄 교리에 관한 성경적 진리를 고수하는 데 있었다는 사실이다. 이는 오랑주 공의회(529)의 규정에 상세히 명시되어 있다. 문제를 정확히 진단하지 않으면, 그 해결책(구원 교리)을 결코 올바르게 이해할 수 없다.
다음 글에서는 로마 가톨릭이 원죄 교리를 인정하면서도 인간이 처한 또 다른 문제를 오해한 결과 왜곡된 구원론을 발전시켰다는 점을 살펴보겠다.
이 글은 원래 리고니어 미니스트리 블로그에 게재되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