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위로의 하나님 - 리고니어 미니스트리
요한계시록 3장 20절
2022년 09월 27일
정사와 권세
2022년 10월 0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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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위로의 하나님

편집자 노트: 이 글은 테이블톡 매거진 시리즈: “그 구절이 정말 무엇을 의미하나요?”의 열세 번째 글입니다.

얼마나 잘 고난을 받고 있는가? 나는 하나님의 입양된 자녀지만 고난에 익숙하지 않다. 나는 여러분 또한 이 분야에서 성장해야 한다고 확신한다. 

하나님의 양자로서 우리는 다양한 이유로 고난을 받는다. 첫째, 아담의 죄로 말미암아 우리는 타락한 세상에서 고난에 직면한다. 하나님의 섭리적 두드림은 우리를 하나님께 대한 회개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이끌기 위한 것이다(롬 2:1~5, 8:18~39). 둘째, 우리는 종종 우리의 죄된 생각, 욕망, 말, 행동의 결과로 고난을 겪는다(벧전 4:12~19). 죄에는 항상 결과가 있다. 하지만 하나님의 자비와 은혜는 우리를 선한 목자에게로 다시 부르심을 받게 한다(2:18~25, 요일 1:5~2:2). 마지막으로 우리는 그리스도와 연합되어 있으므로 우리는 이 세상과 마귀의 표적으로 고난을 받는다. 

고난을 겪을 때 이유가 무엇이든 우리는 상처를 받는다. 배를 가격하는 것처럼 고난은 성령의 모든 바람을 뿜어내게 하는 것처럼 보인다. 우리는 숨을 쉬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우리는 무엇이 필요한가? 성령이 우리를 소생시키실 때 우리는 우리를 붙드시고 위로하실 모든 위로의 하나님이 필요하다. 하나님의 위로는 슬픔과 괴로움을 누그러뜨린다. 또한 하나님의 위로는 우리를 강하게 하고 필요하면 회개로 이끈다.

구약 성경은 우리의 위로를 위한 토대를 마련해 준다. 솔로몬은 압제당하는 자들은 그들을 변호할 자가 없고 악인들은 권세가 있는 것 같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런 덧없음이 결론은 아니다. 왜냐하면 선한 목자 주님이 하나님의 자녀들을 돌보기 때문이다(시 23, 50, 52, 65, 70, 82, 119). 하나님의 말씀은 위로를 준다. 선지자들은 포로 생활에서 징계받은 하나님의 백성을 하나님이 위로하실 것이라고 말한다(사 12:1, 22:4, 51:3, 19, 슥 1:17). 좋은 소식은 하나님이 자신의 백성을 위로하신다는 것이다(사 40:1~5). 예수님이 나사렛에 있는 회당에서 하신 설교에서(눅 4:16~21) 선언하셨던 것처럼 예수님은 이 약속을 성취하신다(61:1~4). 하나님의 위로는 선한 목자이신 예수님 안에서 완전하다(요 10:1-21).

이런 위로는 신약성경에서 아주 분명하다. 우리는 신약 성경 전체에 걸쳐서 위로를 찾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고린도후서 1장에 있는 바울의 말에 집중하자. 하나님의 위로가 이 전체 서신의 주요 주제이다. 바울은 여러분과 내가 합친 것보다 더 많은 고난을 겪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를 위로하셨다(고후 4:7~12, 6:3~10, 11:16~12:10). 고린도후서 1: 3~11절을 읽어라. 바울은 하나님을 송축한다. 바울은 하나님의 두 가지 특성에 초점을 맞춘다. 첫째, 하나님은 자비의 아버지이시다. 우리의 하늘 아버지는 마음이 비정하지 않고 온화하시다. 그분은 고난과 고통 속에서도 우리에게 자비를 베푸신다. 이것은 시내 산에서 모세에게 하신 그분의 놀라운 자기 묘사보다 더 좋다(출 34장). 그분은 돌, 뱀, 전갈이 아니라 떡, 생선, 계란, 심지어 성령도 주신다(마 7:7-11; 눅 11:9-11).

예수님은 우리를 아버지께 인도하시고 아버지의 위로는 새 언약의 중요한 축복이다.

둘째, 그분은 모든 위로의 하나님이시다. 그분은 우리의 모든 고난에서 우리를 위로하신다. 그분은 우리에게 받을 자격이 없는 자비를 베푸실 뿐만 아니라 두 가지 목적을 위해 위로도 부어 주신다. 첫째, 그분은 우리를 위로하신다. 이것은 우리가 이와 같은 자비로운 위로로 다른 사람들을 위로할 수 있게 하기 위함이다. 이것은 우리 이웃을 우리 자신처럼 사랑하는 것이다.

가혹하고 감당할 수 없는 환난과 섭리적 두드림의 두 번째 목적은 자만과 자기 의존을 죽이고 우리의 확신과 의존을 부활의 하나님께 돌리는 것이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서 우리 안에 있는 모든 것으로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이다. 이런 두 가지 목적 – 아버지의 위로로 다른 사람들을 위로하는 것과 고난을 통해 우리를 건지시는 아버지의 초자연적인 능력을 신뢰하는 것- 은 성령이 우리를 회복시키실 때 우리가 숨을 쉬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그렇다. 고난과 가혹한 섭리가 닥칠 때, 성령이 우리를 떠났다고 느낄 때 우리에게 무엇이 필요한가? 성령이 우리에게 위로를 주실 때 우리는 위로하시는 아버지의 약속을 붙들어야 한다(행 9:31). 아버지는 마음이 온화하시다. 얼마나 위로가 되는가? 우리는 은혜의 보좌 앞에서 환영받는다.

최종 관찰: 바울은 자신이 예수님을 본받는 한 우리가 자신을 본받기를 원한다(고전 11:1, 살전 1:6). 예수님은 새 언약의 중보자이시다. 예수님은 또한 신실한 새 언약 섬김의 모범이시다(벧전 2:18~24). 예수님은 부어주신 성령을 통해 아버지의 자비와 위로를 적용하신다. 예수님은 우리의 신실하고 자비로운 대제사장이시다(히 2:14~18; 웨스트민스터 대요리 문답 55를 보라). 다른 모든 것보다 더 좋으신 그분은 우리를 동정하실 수 있다. 왜냐하면 그분은 고난을 겪으셨고 이런 고난 가운데 시험을 받으셨지만 죄는 짓지 않으셨기 때문이다(히 4:14~16). 그분은 이런 고난을 통해 배우셨다(5:7-10). 우리는 그분을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로 바라보아야 한다(12:1~11). 그분은 우리를 아버지께로 인도하신다(요 17장). 아버지의 위로는 새 언약의 중요한 축복이다.

친애하는 친구이자 고통받는 동료 여러분이여. 우리의 고난을 낭비하지 말자. 고난을 잘 겪어내자. 바울처럼 고난을 받자. 예수님처럼 고난을 받자. 어째서 그래야하는가? 우리는 우리 자신을 의지하지 않고 죽은 자를 살리시는 자비의 아버지를 의지할 것이다. 어째서 그래야하는가? 우리는 아버지에게서 받은 것과 같은 위로로 다른 사람들을 위로할 수 있다. 우리 모두가 그분의 영광을 위해 고난 받는 법을 잘 배우도록 기도하자.

우리가 다음과 같은 축복을 받기를 바란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희 무리와 함께 있을지어다(고후 13:13)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우리를 사랑하시고 영원한 위로와 좋은 소망을 은혜로 주신 하나님 우리 아버지께서 너희 마음을 위로하시고 모든 선한 일과 말에 굳건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살후 2:16~17)

아멘.

 

이 글은 원래 테이블톡 매거진에 게재되었습니다.

조지 C. 스키피오네
조지 C. 스키피오네
조지 스키피오네(George C. Scipione) 박사는 피츠버그(Pittsburgh)에 있는 개혁주의 장로교 신학대학원(Reformed Presbyterian Theological Seminary)의 목회 상담 겸임 교수이다. 그는 《The Battle for the Biblical Family and Timothy, Titus and You》의 저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