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례자 (그리고 그들의 주인) - 리고니어 미니스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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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례자 (그리고 그들의 주인)

편집자 노트: 이 글은 테이블톡 매거진 시리즈:N.T. 라이트는 뭐라고 말했나?의 열두 번째 글입니다.

지혜로운 여행자는 방문하는 나라의 관습과 언어에 적응을 잘한다. 우리가 해외(잉글랜드)에서 살았을 때 그곳 사람들은 우리에게 우리의 건강에 관해 묻지 않았다. 실례로 간주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잉글랜드를 떠난 후에 우리는 예의 바른 한 미국 여성의 질문에 힘을 얻었다. 잉글랜드에서 실례였던 것이 댈러스에서는 예의였던 것이다. 가변적인 신학 전통은 해외를 여행하는 것과 같다. 새로운 나라에 도착할 때 여행자는 아마 새로운 언어와 문화를 접하게 될 것이다. 말하자면 새로운 신학, 새로운 경건, 새로운 실천을 접하게 될 것이다. 이처럼 이(異)-문화 간 접촉이 있게 되면 주인과 순례자 모두에게 기회와 의무가 생긴다. 

  북미에는 약 6천만 명의 복음주의자가 있다. 그에 반해 신조주의적인 개혁파 신자는 1백만 명에도 미치지 못한다. 이런 숫자의 불균형의 한 가지 결과는 미국 복음주의자의 신학, 경건, 실천이 대다수 그리스도인들의 기대를 지배하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 복음주의의 영향으로 18세기에 시작되고 19세기에 계속된 일련의 종교적 부흥이 일어났다. 이 두 부흥은 함축성은 차이가 있으나 중요성은 비슷했다. 이 두 부흥은 다양한 종교적 경험을 중심으로 확립되었다. 이 두 부흥은 그 경험에 도달하는 방법 그리고 그 경험이 의미하는 것에서는 차이가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교적 경험의 통상적 맥락은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직접 만나는 종류의 경험이든 또는 설교단 앞에서 겪은 회심 경험이든, 그 둘을 하나로 묶는다. 18세기 초 이후로 미국의 모든 복음주의자는 깊고 개인적인 종교적 경험을 갖고 싶은 갈망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에 반해 신조주의적인 개혁파 교회들의 신학, 경건, 실천은 종교적 경험에 대한 갈망이아니라 오히려 어떤 종류의 신앙고백, 예배, 그리스도인의 삶에 대한 접근으로 채워져 있었다. 이 신조주의적인 개혁파 교회들은 그리스도께서 성령으로 말미암아 자신의 복음을 통해 우리 안에서 행하시는 역사를 강하게 믿는다. 그러나 그것은 모두 역사 속에서 그리스도께서 죄인들을 위하여 행하신 것과 함께 시작된다. 복음주의의 부흥 운동 전통은 우리 안에서 행하시는 성령의 현재 역사가 종종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행하신 객관적 역사를 대신한다. 

  미국의 개신교 교파들은 자기들의 뿌리를 개신교 종교개혁에서 찾고, 많은 교파들이 종교개혁의 유산을 기억하려고 애쓴다. 그러나 대다수 교파와 교회들은 18세기와 19세기의 기독교 비판자들에게 동조하고, 대신 옛날 종교개혁 전통은 거부했다. 그들은 부흥 운동 지지자들과 같이 종교적 경험에 지나치게 의존했다. 그리고 역사의 예수를 “신앙의 예수”나 개인적 경험의 예수로 대체했다.  

  그러나 자기들의 뿌리를 종교개혁에서 찾을 뿐만 아니라 칼뱅과 그의 계승자들이 고백한 것과 동일한 신앙을 계속 믿고 있는 교회들도 존재한다. 이 교회들은 칼뱅이 세운 교회가 견지했던 것과 동일한 예배 및 기독교적 삶에 대한 동일한 접근법을 갖고 있다고 고백한다. 이 개혁파 교회들은 활력적인 신학, 경건, 실천을 갖고 있으나 미국의 부흥 운동에 의해 형성된 것과는 다른 부류에 속해 있다. 이 개혁파 교회들은 위기보다 양육에 더 큰 관심을 두었다. 그리고 설교단 가까운 자리나 영접 기도보다 개혁파가 은혜의 수단으로 부르는 것(말씀, 성례, 기도)에 더 큰 관심을 두었다. 

  미국 부흥 운동 전통의 많은 부분이 종교개혁의 뿌리들을 보존했기 때문에 미국 개신교의 신조주의 진영과 부흥 운동 진영은 잠시 공존하면서 협력하기도 했다. 그러나 결국 근본적인 긴장이 표면화되고 관계는 깨졌다. 따라서 신조주의 교회들은 구 자유주의 노선과 부흥 운동 전통에서 모두 분리되었다. 

  이런 변화에도 불구하고 부흥 운동 전통에서 떠나온 순례자들은 종종 신조주의적인 개혁파 교회에서 자기들의 길을 찾았다. 만약 여러분이 이런 순례자 가운데 하나라면, 나는 이 기사가 여러분이 처음에 신조주의적인 개혁파 교회에서 왜 낯선 느낌을 크게 가졌는지를 좀 더 잘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여러분은 국경과 국제 날짜 변경선을 넘었는데, 그것을 모르고 있었다. 만약 여러분이 의도적으로 역사적이고 신조주의적인 개혁파 교회를 찾았다면, 17세기, 아니 심지어는 16세기로 여행하는 시간을 잠시 가질 수 있다. 그럴 때 지혜로운 여행자가 되라. 적응하는 시간을 가져라. 목적지를 즐겨라. 

    종교적 즉석 음식에 길들여진 미국인들은 

    새로운 음식을 즐기는 법을 배우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이제 이런 순례자들의 주인이라고 생각하는 교회들(내가 다니는 교회와 같은)에게 한 마디 하겠다. 제발 새로 들어온 친구들을 혼란에 빠뜨리지 말라. 그들은 우리가 익숙한 언어, 관습, 음식에 생소하다. 그들은 종교개혁에 의해 형성되지 않은 기대들을 갖고 있다. 우리가 복음, 성례, 가시적 교회를 강조하는 것이 그들에게 지나치게 형식적이라는 인상을 줄 수 있다. 우리에게는 두 가지 선택이 있다. 우리가 진실로 그들의 전통에 속해 있다고 주장하거나 그들을 서서히 점차적으로 우리 편으로 이끌거나 할 수 있다. 나는 후자를 추천한다. 종교적 즉석 음식에 길들여진 미국인들은 새로운 음식, 언어, 문화를 즐기는 법을 배우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만약 우리가 순례자 뒤에서 머뭇거리고만 있으면 순례자에게 무엇이 유익하겠는가(마 5:13)? 우리는 순례자 형제들을 팔을 벌리고 성경을 펼치고 따스한 미소를 머금고 환영해야 한다. 그렇게 할 때 우리의 위대한 선조 장 칼뱅을 본받아야 할 것이다. 장 칼뱅은 순례자를 환영했을 뿐만 아니라 종교개혁 신앙에 대한 충성된 증인의 역할도 다했다. 

이 글은 원래 리고니어 미니스트리 블로그에 게재되었습니다.

스캇 클락
스캇 클락
스캇 클락(R. Scott Clark) 박사는 캘리포니아 웨스트민스터 신학교의 교회사 및 역사 신학 교수이자 Escondido United Reformed Church의 부목사다. 그는 Recovering the Reformed Confession의 저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