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립보서 4:13 - 리고니어 미니스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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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립보서 4:13

편집자 노트: 이 글은 테이블톡 매거진 시리즈: “그 구절이 정말 무엇을 의미하나요?”의 아홉 번째 글입니다.

최근에 운동선수가 패배한 후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라고 말하는 것을 들은 기억이 있는가? 미국 스포츠에서 경기 후에 승리자 중 한 명이 빌립보서 4:13절을 인용하는 것을 듣는 것은 흔한 일이다. 패배하는 쪽에서 그런 고백을 듣는 경우는 거의 없다. 이런 현상은 스포츠에서 가장 분명하게 나타나지만 다른 경쟁 분야에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왜 우리는 이 구절을 승리의 상황 속에서만 듣는 것처럼 보일까? 이것이 이 말씀의 적용 범위인가? 

우리는 일반적으로 이 구절을 승리와 연관시킨다. 왜냐하면 “하다”라는 동사는 성공이나 성취로 들리기 때문이다. 패배는 일반적으로 중요한 무언가를 하지 않거나 이기지 못하는 것의 결과이다. 따라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라는 고백을 들을 때 그런 고백을 이기는 것과 연관짓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다. 왜냐하면 승리자들은 중요한 무언가를 했기 때문이다.

승리의 순간에 승자가 성공할 수 있었던 원동력의 이유를 그리스도에게 돌린다면 이것은 적절하고 좋은 일이다. 하지만 그 순간부터 이 구절이 단지 승자에게만 속한다고 단정하는 것은 실수일 것이다. 누구도 그가 성공하지 않을 때 예수님이 그와 함께하지 않기 때문이라거나 하나님의 은혜에서 멀어졌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이것은 분명히 바울이 의미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고통이나 굶주림이나 두려움 속에서 하나님을 버리거나 불평하기보다는 오히려 바울은 자신이 처한 상황 가운데서 평화로웠다. 바울은 자족 “했다.”

바울은 로마에 있는 감옥에서 빌립보 교인들에게 편지를 썼다. 감옥은 승자를 위한 장소가 아니다, 적어도 이 세상이 그렇게 정의하지 않는다. 물론 바울도 그런 정의들을 이 세상으로부터 가져오지 않았다. 그의 “한다”는 단순한 “승리” 이상이었다. 또한 그의 “모든 것”은 트로피 상자 안에서나 사무실 벽에서 기념되는 것 이상의 것을 포함했다.

바울이 감금된 상황은 혼자 힘으로 생존하려고 하는 누구든지 짓밟아버렸을 것이다. 그가 투옥된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은 것처럼 거짓 선생들은 그를 더 괴롭히려고 애쓰고 있었다(1:17). 그리고 변변찮은 음식도 그를 “괴롭혔다”(4:14). 또한 감옥에서 풀려나기도 힘들고 죽을 수도 없었다(1:20). 하지만 고통이나 굶주림이나 두려움으로 하나님을 버리거나 불평하기보다는 오히려 바울은 자신이 처한 상황에서 평화로웠다. 바울은 자족 “했다. 그리고 설명할 수 없는 이런 성공의 비밀 (절망적인 상황에서 그가 보여주는 이런 인내의 이유) 은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이었다.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 4:11-13).

바울이 13절까지 전개할 때 “배고픔,” “궁핍,” “비천,”과 같은 표현을 “모든 것”이라는 어구에 제시해 넣은 것에 주목하라. 바울이 그리스도를 통해 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그는 궁핍과 비천함의 기간을 염두에 두고 있다. 바울은 삶에서 “손해”를 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족한다. 왜냐하면 그는 하나님이 여전히 자신과 함께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모든 상황에서 패배한 선수들과 그리스도인들이 승리한 사람만큼이나 많이 빌립보서 4:13절을 자신의 말씀으로 가져야 한다. 즉 예수님은 자기 백성이 성공과 번영하는 시기만큼이나 그들이 상실과 투쟁과 상심 가운데에서도 그들을 돌보고 강하게 하신다. 이런 의미에서 빌립보서 4:13절에 나오는 바울의 말은 거의 7세기 전의 하박국 선지자의 말을 상기시킨다.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라”(합 3:17-19). 하박국은 자신의 궁핍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하나님 안에서 기뻐“했다.” 왜냐하면 그는 구원의 하나님의 힘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모든 것”이라는 범주에서 바울이 풍부와 넘침의 때를 언급한다는 사실 또한 놓쳐서는 안 된다. 그리스도는 더 안락한 시기를 사는 자신의 백성도 지탱해 주셔야 한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잊으려는 유혹은 그분의 축복이 없을 때뿐만 아니라 풍성할 때도 발생하기 때문이다.

풍요에 맞서기 위해 도움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직관에 어긋난다. 하지만 우리가 신실하게 남아, 하나님의 축복을 이용하고, 스스로 그 축복의 공로를 차지하고, 은사를 주시는 분보다 은사를 우상화하려는 안락한 시대의 유혹을 거부하기 위해서는 신적인 힘이 요구된다. 따라서 성공의 시작에 그리스도께 공을 돌리는 사람은 누구든지 성공을 주셨던 분을 잊지 않기 위해 계속해서 그 기간 동안 그분을 의지해야 한다.

빌립보서 4:13절은 우리 주 예수께서 그분을 믿는 믿음을 통해서 그분이 우리를 어떤 상황에 처하게 하든지, 곧 가난의 압박에서 번영의 정제하는 불길까지 자족으로 인내할 수 있도록 가르치신다. “이기는” 그리스도인들만을 위한 모토 이상으로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는 말씀은 주님의 군대에 속한 모든 군사들의 끊임없는 주장이다. 산꼭대기를 가로질러 행군하든 계곡을 터벅터벅 걸어가든 우리는 주님 안에서 자족할 수 있다. 왜냐하면 주님이 항상 우리와 함께하시고 우리의 모든 필요를 공급하시며 사랑으로 우리를 궁극적인 승리로 인도하시기 때문이다. 

이 글은 원래 테이블톡 매거진에 게재되었습니다.

타일러 케니
타일러 케니
타일러 케니(Tyler Kenney)는 리고니어 미니스트리(Ligonier Ministries)의 디지털 콘텐츠 관리자이며 미니애폴리스에 있는 베들레헴 신학교(Bethlehem Seminary)를 졸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