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 43장 25절 - 리고니어 미니스트리
성경을 올바로 해석하기
2022년 08월 25일
예레미야 29:11
2022년 09월 0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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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43장 25절

편집자 노트: 이 글은 테이블톡 매거진 시리즈: “그 구절이 정말 무엇을 의미하나요?”의 두 번째 글입니다.

우리 교회의 한 장로님은 종종 이렇게 이야기하신다. “사람들이 말하길, 나이가 들수록 단기 기억력이 두 번째로 사라진다고 하지. 그런데 첫 번째가 무엇이었는지 기억이 잘 나질 않구먼.” 죄로 인해 왜곡되고, 나이가 들수록 나빠지는 한정된 기억력은 누구에게나 마찬가지다. 그런데 이사야 43장 25절에서 “네 죄를 기억하지 아니하리라”고 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떠올려볼 때, 우리는 그분의 기억력에 대해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하나님이 정말 망각하신다는 뜻으로 본문을 해석하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그 이유는 우리에게 매우 중요하고 놀라운 진리를 가르쳐준다. 

유비적 언어

무한하신 우리 하나님은 성경 전반에 걸쳐 유비적 언어(analogical language)로 자신을 드러내신다. 이 표현 방식은 인간의 제한적 언어와 한정적인 이해에 맞춰 하나님에 관하여 직접적 서술 대신 은유적으로 설명하는 방법이다. 성경은 인간의 행동을 하나님께 적용시킨다. 예를 들어, 향기를 맡고(창8:21), 듣고(출2:24), 앉고(시9:7), 내려오신다는(미1:33) 표현으로 하나님을 설명하는 것이다. 한탄과(창6:6) 시기(출20:5)와 같은 사람의 감정 역시 하나님이 누구이신지 가르쳐주는 묘사 방식이다. 하나님이 신체를 가지신 건 아니지만, 성경은 그분의 손(시118:15)과 눈(잠15:3)에 대해서도 말한다. 사람의 직업과 관계를 나타내는 언어로 하나님을 남편(사54:4), 아버지(신32:6), 왕(사44:6), 목자(시23:1) 등으로 서술한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기억하심(창9:15)과 잊으심 역시 이러한 유비적 언어로 해석해야 한다.

하나님의 본질

하나님의 무오한 말씀은 모순이 없다는 확신과 함께, “믿음의 유비(analogy of faith)”는 성경 해석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원리이다. 믿음의 유비는 평이하고 직설적인 성경 본문으로 더 난해하고 비유적인 성경 내용을 해석하도록 한다. 하나님께서 “기억하지 아니하신다”라는 표현은, 마치 우리가 고등학교 때 배운 수학 공식을 잊었다는 듯, 문자 그대로의 기억 상실이 아니다. 망각은 성경이 가르치는 하나님의 전지하심이나 하나님의 완전하고 완벽하신 지식에 모순된다. 하나님의 지혜는 무궁(시 147:5)하시며 “시초부터 종말을(사 46:10)” 선포하신다는 사실을 우리는 성경에서 배워왔다. 망각이란 하나님의 속성에서 완전히 어긋난다. 

하나님이 그야말로 우리의 죄를 잊으신 게 아니시라면, 이사야 43장 25절은 어떤 의미를 지닌 것일까? 하나님에 관한 이사야의 이 묘사는 하나님께서 죄에 대한 전적인 용서를 그분의 백성에게 보장하신다는 언약적 언어로 이해해야 한다.

언약적 언어

하나님이 그야말로 우리의 죄를 잊으신 게 아니시라면, 이사야 43장 25절은 어떤 의미를 지닌 것일까? 하나님에 관한 이사야의 이 묘사는 하나님께서 죄에 대한 전적인 용서를 그분의 백성에게 보장하신다는 언약적 언어로 이해해야 한다. 25절 직전 구절들은 백성의 불신과 거짓 예배를 상기시키고, “네 죄악으로 나를 괴롭게 하였느니라(22~24절)”는 말씀으로 마친다. 그러나 이사야 43장 전체는,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위로와 확신이 담긴 40장부터 시작하는 더 큰 그림의 한 조각이다. 43장 1~4절에서 하나님이 그분의 백성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다.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대저 나는 여호와 네 하나님이요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요 네 구원자임이라… 네가 내 눈에 보배롭고 존귀하며 내가 너를 사랑하였은즉

하나님께서 범죄한 이스라엘을 구속하신다는 언약적 관계가 여기에서 확증된다. 그런 후에, “나 곧 나는 나를 위하여 네 허물을 도말하는 자니 네 죄를 기억하지 아니하리라”고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이다. “나를 위하여”라는 강조는 하나님의 은혜적 언약을 시사한다. 하나님께서 백성들의 죄를 제하시는 것은 그들이 그럴 만해서가 아니라, 그들에 대한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와 사랑 때문이다. 

본문에 담긴 다른 두 개의 비유적 표현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가 어떻게 최종적으로 완전하게 용서됐는지를 확인해 준다. 첫째, “도말하다”라는 비유는 기록된 무언가를 지워버린다는 표현이다. 하나님께 대항하여 마땅히 심판받아야 하는 이스라엘의 죄들은 책에 기록된 것으로 묘사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 기록을 지우신다. 이스라엘의 죄는 더 이상 읽히거나, 그들을 비난하는 용도로 사용되지 않을 것이다. 둘째,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죄가 마치 잊힌 것과 같이 확실하다는 점을 보장하신다. 성경 속 하나님은 그분의 용서와 그에 따르는 유익이 얼마나 완전하고 최종적인지 다양한 이미지를 통하여 강조하신다. 우리의 죄가 가려진다거나(시 32:1), 동이 서에서 먼 것 같이 우리의 죄과를 멀리 옮기셨다거나(시 103:12), 우리의 모든 죄를 깊은 바다에 던지신다고(미 7:19) 말씀하셨다. 

성경 곳곳에서는 하나님께서 죄된 인간들과 어떻게 언약적 관계를 맺으시고, 그들의 죄를 “잊으시는지” 밝히고 있다. 하나님이 깜박하신 게 아니다. 진부한 표현법도 아니다. 하나님께서 백성들의 죄를 감당케 하시고자 독생자를 이 땅에 보내시고,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기 때문이다. 그로 인해 이스라엘의 죄과가 지워지고, 마치 그들의 죄가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영원히 지워진 것 처럼 만드신 것이다.

이 글은 원래 테이블톡 매거진에 게재되었습니다.

H.P. 맥크레켄
H.P. 맥크레켄
H.P. 맥크레켄 목사는 콜로라도주의 롱몬트(Longmont)에 위치한 빛과 소금의 개혁 장로교회(Salt & Light Reformed Presbyterian Church)에 시무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