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세기 교회라고요? - 리고니어 미니스트리
생명의 피
2022년 10월 13일
때가 차매
2022년 10월 20일
생명의 피
2022년 10월 13일
때가 차매
2022년 10월 20일

1세기 교회라고요?

편집자 노트: 이 글은 테이블톡 매거진 시리즈: “고뇌와 황홀감: 1세기 그리스도 행전”의 다섯 번째 글입니다.

신약 교회에 출석한다고 말하는 현대 그리스도인들이 있다. 그 의미를 여러 측면에서 고려한다 치더라도, 나는 곧 바로 “왜 그러기를 원하시는 거죠?”라는 질문을 던지고 싶다. 성찬식을 하다 취해도 되는지 묻는 것인가? 아니면 돼지고기, 우상 숭배, 할례와 같은 논쟁거리들에 사로잡혀 있다는 것인가? 구약을 성경의 일부로 이해한다지만 단순히 “오직 성경”에 동의하는 차원이라면 이것은 의미가 없다. 물은 보기보다 항상 깊은 법이기 때문이다. 

계시와 역사에 대한 조금은 낭만적인 추측이 이러한 정서로 몰아간다. 이들의 견지에서는 1세기 교회란 순수하고, 잘 관리되었으며, 성숙했다. 사도들이 죽고 나서야 교회가 타락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는 교회사에 대한 복음주의자들의 전형적인 추정이다. 백 년에서 삼백 년 정도의 교회의 황금기가 지나가고, 천 년 이상의 암흑기가 이어진다는 견해이다.

종교 개혁의 계승자들은 교리와 실천의 부패가 실제로 일어났다고 인정한다. 그렇지 않았다면, 종교 개혁이 왜 필요했겠는가? 그러나 전통적인 개신교도들의 입장에서 보자면, 진짜 문제는 훨씬 더 후에 발생했으며, 교회의 특정 부분만이 점진적인 과정에서 병들었다고 여겼다. 예를 들어 우리는 샤를마뉴 궁정에서 엄청난 일들이 벌어진 걸 알고 있다. 중세 전성기 동안에는 신실한 성도들이 복음 사역을 위해 힘썼다는 것도 확인할 수 있다. 그렇기에 일들이 진행되는 방식에 있어서 갖는 불만들이 종교개혁의 원인이 되었다. 

이제 1세기로 돌아가보자. 1세기에 대한 우리의 관점은 현대 그리스도인에 대한 좋은 시금석이 되어준다. 현대 교회가 회복된 교회로 보기도 한다. 초대 교회의 원형이 사라졌다가 하나님이 다시 되돌려주셨다는 견해다. 이러한 회복 주의자들의 사고방식은 지난 2세기에 걸쳐서 하나님의 사역이 특별히 이 미국 땅에서 다시 시작되었다고 본다. 그러므로 “여러분의 교회는 어디에서 시작되었나요?”라는 질문에 “1세기 초대 교회입니다.”라고 통상적으로 답한다. 그러나 전통적인 개신교도들에게 “종교 개혁 이전의 교회는 어디 있었는가?”라고 묻는다면, 그들의 대답은 “세수하기 전까지 당신의 얼굴은 어디 있었지요?”라고 반문하는 것과 같다.

차이점은 ‘빵 속에서 누룩이 서서히 자라는 것을 보는 역사관’과 ‘하나님 나라가 멈췄다가 다시 진행되는 방식으로 도래하는 것으로 보는 역사관’ 사이에서 찾을 수 있다. 후자의 관점은 1세기 초대교회가 완벽했기에 우리의 현재 역시 완전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그저 이것 아니면 저것이라는 식의 사고방식이다. 이와는 달리, 전자의 관점에서는 성장, 퇴보, 개혁, 교리의 전진 등을 본다. 이는 완벽주의가 아니다. 그러나 이것 아니면 저것이라는 사고는 완벽주의적이며, 옹호의 여지가 없는 문제들에 대해 방어적 교리만을 양산하게 된다. 

우리의 전통과 예배 형식에 대해 생각해보자. 덮어두고 무조건 “신약교회”가 되려고 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인 실천을 양산해 낸다. 심각한 역사적 무지는 1세기를 우리의 기독교 영성관에 제대로 투영하지 못한 채 그저 여백으로만 남겨둔다. 따라서, 미국 켄터키 인근에서 시작한 예배 형태가 베드로나 야고보 혹은 요한의 예배 모범이라고 생각하는 착각을 가져왔다. 파이프 오르간 연주보다는 기타를 곁들인 삼중창이 더욱더 영적이고 간결하며 경건하다고 여기게 되었다. 어떤 사람들은 신약 성경의 포도주는 무조건 포도 주스라고 믿는다. 그들이 그렇게 생각할 수 있는 이유는 고작 1세기 전에 미국 미주리 지역에서 누군가가 포도 주스를 강하게 주장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역사적 견지를 고려하면, 바울이 성찬상에서 포도 주스를 제공했다고 고집하는 것은, 바울이 넥타이를 매고 있었다고 주장하는 것만큼이나 어리석은 말이다.

일부 중세 교회의 예배는 성경을 바탕으로 세워진 1세기의 기준에서 멀어졌다. 그들의 표류는 비난받기 충분했으며, 이는 종교 개혁으로 이어졌다. 종교 개혁자들은 바람직하게 “근원으로 돌아가자(ad fontes)!”라고 외쳤다. 성경이 최종적이고 무오한 기준이라는 것은 맞지만, 그들이 호소하는 근원은 성경에만 국한되지는 않았다. 종교 개혁자들은 그 당시 유럽 내에서 가장 훌륭한 교부 신학자들이었기에, 교회가 몇 세기에 걸쳐 이어온 신실한 방식까지도 염두에 두었다.

이와는 반대로, 우리는 우리가 가진 문화적 맥락 안에 성경을 가둬둔 채, 성경을 읽고 해석하려 한다. 계시와 역사의 관점에서 이 시대를 보지 않는 것이다. 복음의 많은 부분이 여전히 정확하게 읽히고 있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이다. 그러나 여러 방면에 있어서 우리의 복음주의적 전통은 어리석기 그지없다. 우리가 원하는 최종적인 모습이 1세기 초대 교회라는 사실 때문이다. 

이 글은 원래 테이블톡 매거진에 게재되었습니다.

더글라스 윌슨
더글라스 윌슨
더글라스 윌슨 (Dougals Wilson) 목사는 아이다주 모스코(Moscow)에 있는 Christ Church의 목사이며 여러 권의 책을 저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