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트의 전가 이론은 잘못되었다 - 리고니어 미니스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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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트의 전가 이론은 잘못되었다

편집자 노트: 이 글은 테이블톡 매거진 시리즈:N.T. 라이트는 뭐라고 말했나?의 열번째 글입니다.


“그러므로 나 자신이 속한 전통을 포함하여 일부 개혁파 전통이 예수님은 ‘율법에 순종하셨고’ 그래서 자기를 믿는 자들의 것으로 여겨질 수 있는 ‘의’를 얻으셨다고 가정하는 것은 솔직히 범주 오류다……신자의 것으로 ‘여겨지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의’가 아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이다.” 

–N. T. 라이트, 『톰 라이트, 칭의를 말하다』

(에클레시아북스 역간, 원제: Justification: God’s Plan and Paul’s Vision), 232쪽. 

라이트의 견해 요약 

그리스도의 의가 신자에게 전가되는 것은 인위적으로 만들어낸 것으로서 실제 성경에서 비롯되지 않은 단지 조직 신학의 관념인가? N. T. 라이트는 전통적인 전가 교리는 바울이 말하는 의미를 명확히 풀어내지 못한다고 주장한다. 라이트는 바울 서신에 나오는 칭의 언어가 법정 언어에서 비롯되었다고 강조함으로써 자신의 입장을 옹호한다. 곧 의는 사람의 법적 신분과 관련되어 있고 사람의 도덕적 성품과 혼동해서는 안 된다. 그리고 우리가 법정에 관해 생각할 때 전가 관념이 배제되는 것이 분명하다고 라이트는 말한다. 왜냐하면 법정에서는 어느 누구도 재판장의 의를 기초로 정당성이 입증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재판장은 자신의 의를 피고에게 제공하거나 이전시킬 수 없다고 라이트는 주장한다. 문제는 재판장이 고소당한 사람을 옳다고 선언할지—재판장이 고소당한 사람에게 무죄 판결을 할지— 여부에 있다. 따라서 칭의는 도덕적 성품이 아니라 사람의 법적 신분에 대하여 말하는 개념이다. 사람들의 좋은 행실이나 나쁜 행실이 판결의 기초라는 관념은 조금도 없다. 칭의는 사람이 재판장에 의해 무죄 판결을 받거나 정당성이 입증된 것을 의미한다. 

라이트의 견해에 대한 답변 

라이트의 해석은 잘못되었고 여러 가지 면에서 혼동이 있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씩 문제점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첫째, 라이트는 칭의는 법정과 관련되어 있고, 법적 선언을 표현한다고 올바르게 말한다. 우리가 의롭게 될 때 하나님은 재판장으로서 우리에게 무죄 판결을 하시며 우리가 그분 앞에서 옳다고 선언하신다. 라이트는 이 문제에 있어서 올바르다. 

둘째, 그러나 라이트는 칭의는 법적 선언이고, 따라서 사람의 도덕적 성품에 기초를 두고 있지 않다고 말할 때 잘못된 길로 빠진다. 여기서 두 가지가 해결되어야 한다. 물론 어떤 의미에서 칭의는 우리의 도덕적 성품에 기초를 두고 있지 않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경건하지 아니한 자를 의롭다 하시기 때문이다(롬 4:5). 만약 칭의가 우리의 도덕적 가치에 달려 있다면 의롭게 될 자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라이트는 도덕적 성품이 칭의와 관련하여 담당하고 있는 역할을 명확히 제시하지 못하고 있고, 또 도덕적 성품과 법정을 완전히 분리시키기 때문에 전가에서 그리스도의 의가 맡고 있는 역할도 제대로 보지 못한다. 이스라엘에서 재판장은 사람에게 무죄나 유죄를 선언했을 때 피고의 도덕적 무죄나 유죄를 기초로 그렇게 판결했다. 성경 본문은 재판장이 피고의 도덕적 행위를 기초로 판결을 내리는 것을 매우 명확히 한다. 이것은 신명기 25:1로 보아 분명하다. “사람들 사이에 시비가 생겨 재판을 청하면 재판장은 그들을 재판하여 의인은 의롭다 하고 악인은 정죄할 것이며.” 따라서 라이트가 사람의 도덕적 행위는 재판장의 선언과 아무 관계가 없다고 말하는 것은 성경의 증거에 위배된다. 확실히 법적 선언의 유일한 기초는 사람의 도덕적 행위, 곧 사람이 결백한가, 결백하지 않은가에 두어져 있었다. 

셋째, 이 모든 것은 전가와 어떻게 관련되어 있는가? 여기서 근본적인 질문은 하나님이 어떻게 죄인들을 의롭다고 선언하실 수 있는가이다. 어떻게 경건하지 아니한 자와 죄인에게 “무죄” 판결이 선언될 수 있는가? 악인을 의롭다고 선언하는 것은 재판장이 마땅히 해야 할 일과 대립한다(잠 17:15를 보라). 그러니 하나님이 악인을 의롭다고 선언하시면 어떻게 의로우실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대한 성경의 답변은 아버지께서 크신 사랑으로 자기 아들을 보내 그 아들이 기꺼이 그리고 기쁘게 죄인들을 대속하기 위하여 자기를 버리도록 하심으로써 죄인들이 받을 진노를 그 아들에게 쏟으셨다는 것이다(롬 3:24~26). 죄인들이 그리스도의 속죄 제사로 용서받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들을 옳다고 선언하실 수 있다. 하나님은 죄인들을 의롭다 하실 때 자신의 도덕적 의로움을 변호하신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께서 죄인들이 받을 형벌을 스스로 받으시기 때문이다. 따라서 도덕적 성품이 칭의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것이 분명하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하나님 자신의 거룩하심이 만족되어 용서가 이루어지게 되었기 때문이다. 

라이트는 법정에서는 어떤 재판장도 자신의 의를 피고에게 줄 수 없다고 주장한다. 여기서 라이트가 저지르는 잘못은 깜짝 놀랄 만하다. 왜냐하면 라이트도 성경에서의 법정의 의미와 중요성은 문화적 배경으로 다 설명될 수 있는 것이 아님을 알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인간 법정에서는 재판장이 피고에게 자신의 의를 주거나 줄 수 없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는 엄밀하게 여기서 성경 본문의 독특성과 복음의 놀라움과 영광을 본다. 하나님은 인간 법정의 규칙의 제한을 받지 아니하신다. 이것은 확실히 매우 특이한 법정이다. 재판장이 자기 아들을 형벌을 받도록 내놓으시니 말이다. 이런 일은 인간 법정에서는 일어나지 않는다! 그리고 재판장은 우리에게 자신의 의를 제공하신다(빌 3:9와 고후 5:21을 보라). 성경 본문은 신적 재판장이신 하나님이 우리에게 자기의 의를 주신다고 명확하게 가르친다. 우리가 믿음으로 그리스도와 연합되면 그리스도에게 속해 있는 모든 것이 우리에게 속하게 된다. 따라서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 있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 옳은 자로 선다. 따라서 우리의 의는 우리 자신의 것이 아니다. 우리는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의를 누리는 것을 즐거워한다. 다시 말해 라이트의 주장과 달리 도덕적 성품은 칭의와 관련되어 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옳은 자로 서 있는 것은 우리의 죄가 사함 받고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누리기 때문이다. 

이 글은 원래 리고니어 미니스트리 블로그에 게재되었습니다.

토마스 슈라이너
토마스 슈라이너
토마스 슈라이너(Thomas R. Schreiner) 박사는 켄터키주 루이빌에 있는 남침례교 신학교의 James Buchanan Harrison 신약 해석학 및 성경 신학 교수이자 신학부 부학장이다. 그는 Spiritual Giff 을 포함한 수많은 책의 저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