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의 깨끗하심을 본받아 - 리고니어 미니스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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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의 깨끗하심을 본받아

편집자 노트: 이 글은 테이블톡 매거진 시리즈: “예수님의 대제사장적 기도”의 여섯 번째 글입니다.

아들이 아빠의 야구 모자를 쓴 채 앞이 보이지 않은 상태로 벽을 향해 돌진하거나 딸아이가 엄마의 신발을 신고 비틀거리는 모습은 어린 자녀를 둔 부모들에게는 익숙한 광경이다. 아이들이 엄마, 아빠를 따라 하는 이런 모습을 보고 있으면 무척이나 귀엽고 흐뭇하다. 하지만, 이러한 아이들의 노력 이면에는 우리가 쉽게 망각하는 놀라운 점이 숨어있다. 자녀들은 천성과 교육에 따라 부모인 우리의 외모와 행동을 닮기 마련이다. 아이들은 우리를 보며 부모처럼 되고자 뭐든 따라 해 본다. 부모의 모자나 신발을 착용하는 것도 그중 일부다. 아이들은 어른이 되고 싶어 한다. 빨리 크고 싶은 게 아이들이다. 

이와 비슷한 모습이 요한일서 3장 3절에도 등장한다. “주를 향하여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하느니라.” 본문에서 요한은 그리스도인들을 향해 하나님의 참 자녀가 되는 것과 윤리적 또는 도덕적 삶을 살아가는 것의 관계에 대하여 이야기한다. 그리스도가 누구신지, 우리가 누구인지를 생각하며 살아감에 있어 요한이 말하는 이 내용을 이해하는 것은 너무나 중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참 자녀가 그리스도 안에서 갖는 소망의 본질과 그 내용을 세심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를 통해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자기를 깨끗하게 하는 것의 의미와, 하나님의 자녀의 정결함과 그리스도의 정결하심의 연결성을 명확하게 이해할 것이다. 

먼저 요한은 하나님의 참 자녀를 “이러한” 소망의 소유자로 여긴다. 요한은 자신이 앞에서 이미 언급한 특별한 약속을 상기시킨다. 편지 서두에서 그리스도인 독자들을 “자녀”라고 표현하고 있다. 이 표현은 단지 애정을 담은 호칭 이상이다. 요한일서 3장 1절에서는 이 표현에 더 큰 의미를 부여한다. “보라 아버지께서 어떠한 사랑을 우리에게 베푸사 하나님의 자녀라 일컬음을 받게 하셨는가” 이 구절은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독생자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통한 우리의 양자 됨을 설명한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로 받으신 모든 유익과 복은 믿음으로 그와 함께 연합된 모든 이들에게 주어진다. 바울이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롬 8:17)”라고 말한 그대로다.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는 내적으로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 살아간다.

그런데 예수님의 승천 이후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한 상속자로서 그분과 함께 이 땅을 통치한다면, 우리는 왜 이 세상의 대적들로부터 여전히 고통받는 것일까? 교회 안의 어떤 사람들은 왜 세상의 약속을 쫓으며 교회를 떠나는 것일까? 이처럼 우리의 경험이 구속의 실상을 반영하지 못할 때가 종종 있다. 요한은 그 이유를 3장 1~2절에서 설명해준다. 첫째, 세상이 하나님과 대적하고 하나님의 왕권을 인정하지 않듯,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반응한다는 것이다. 요한일서 2장 18~19절에서도 배교자들은 그리스도가 아닌 세상과 함께하는 사람들임을 상기시켜준다. 

두 번째 이유로, 요한은 “이제 그러나 아직”이라는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진 우리의 양자됨의 상태를 강조한다. 요한은 그가 앞에서 말한 내용을 되풀이한다. 우리가 이제 하나님의 자녀이나 우리가 어떤 모습으로 변화될 것인지는 아직 밝혀지지는 않았다는 점이다. 여기서 두 가지의 질문이 생긴다: 언제 그것이 밝혀지는가? 하나님의 자녀로서 현재 우리가 갖지 못하는 미래의 진짜 모습은 무엇일까? 

요한은 이 두 질문에 설득력 있게 답한다.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 우리는 예수님의 참모습 그대로를 보며, 그와 같게 될 것이다(요일 3:2). 

다윗의 혈통에서 나신 예수님은 부활하여 하늘에 오르셨을 뿐만 아니라, 영원한 왕국을 받으시어 교회를 시작으로 새로운 왕국을 다스리기 시작하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새로운 왕국의 통치는 대체로 은밀하고 비가시적으로 일어난다. 그의 통치는 오직 예수님의 재림으로 완성된다. 새 하늘과 새 땅이 도래될 때, 전체 창조 세계 속에 하나님의 구속이 온전히 공적이고 가시적으로 완성된다는 뜻이다. 이때 우리는 취소되지 않는, 새로운 피조세계를 다스리는 왕으로 오시는 그리스도를 볼 것이다. 우리 또한 하나님의 양자된 아들과 딸로서 상속자가 되며, 부활하고, 온전히 깨끗하게 되며, 영광스럽게도 그리스도와 함께 온 세상을 완전히 다스릴 것이다. 이것이 바로 세상의 미움과 거짓 성도들의 배교 속에서도 하나님의 자녀들이 소유한 그리스도 안에서의 “소망”이다. 

그렇다면, 이 특정한 (궁극적이고 최종적인 마지막 날에 대한) 종말론적 소망을 지닌 이들에게 그리스도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신약 성경과 구약 헬라어 번역본을 참조하면, 깨끗하게 하다라는 동사는 보통 누군가 또는 무언가를 하나님의 목전이나 성전에 놓이기 합당하도록 정결케 함을 뜻한다(출 19:10; 민 8:21; 요 11:55; 행 21:24, 26; 24:18). 요한일서 3장 3절이나 성경의 다른 구절들(약 4:8; 벧전 1:22)에서는 이 동사가 도덕적 순결을 묘사하는 윤리적 의미로 사용된다. 부활과 영화를 누리며 성자 그리스도의 영원한 통치에 참여하는 소망으로 살아가는 이들은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정결케 되며 윤리적인 삶을 살아간다. 성부 하나님의 거룩한 목적을 이루신 예수님처럼 말이다.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는 내면적으로 새롭게 된 피조물로 살아간다. 그러나 우리의 최고의 유산은 영화로운 깨끗함 가운데 계신 부활하신 예수님을 닮는 것이다. 글의 서두에서 예를 든 아이들처럼, 우리는 예수님을 닮을 수 있다. 소망을 품은 신자는, 마치 부모의 옷을 입어보는 아이처럼, 그리스도의 깨끗함을 본받아 자기 자신을 깨끗하게 할 것이다. 우리가 누구인지 알고, 앞으로 어떻게 될지 알기에 이 땅에서 우리는 오늘도 거룩을 추구한다. 우리는 예수님을 따라 성장하길 소원하며 그날을 고대한다.

이 글은 원래 테이블톡 매거진에 게재되었습니다.

매튜 A. 듀드렉
매튜 A. 듀드렉
매튜 A. 듀드렉(Dr. Matthew A. Dudreck) 박사는 플로리다주 샌포드(Sandford)에 위치한 리포메이션 바이블 칼리지(Reformation Bible College)의 총장이며 신약학 조교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