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7장 1절 - 리고니어 미니스트리
예레미야 29:11
2022년 09월 02일
마태복음 18:20
2022년 09월 0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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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7장 1절

편집자 노트: 이 글은 테이블톡 매거진 시리즈: “그 구절이 정말 무엇을 의미하나요?”의 네 번째 글입니다.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는 마태복음 7장 1절 만큼이나 오해하기 쉬운 성경구절도 많지 않다. 이 성경 본문은 누군가가 다른 사람을 도덕적으로 평가하며 화를 돋우는 상황에서 자주 회자한다. 그런 상황에서 “당신이 누구신데 비판하시죠?”라는 반응이 따라온다.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비판”은 무엇일까? 언제나 그렇듯이, 전체 문맥은 예수님의 말씀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본문은 피상적 종교와는 대조를 이루는 참된 의의 속성을 설명하는 산상수훈 중 일부이다. 예수님은 이중적 기준을 가진 위선자를 우려하셨다. 예수님의 요지는 3~5절에 등장하는 예화 속에 담겨 있다. 

어찌하여 형제의 속에 있는 티는 보고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보라 속에 들보가 있는데 어찌하여 형제에게 말하기를 나로 속에 있는 티를 빼게 하라 하겠느냐. 외식하는 자여 먼저 속에서 들보를 빼어라 후에야 밝히 보고 형제의 속에서 티를 빼리라

헬라어 원어로 본문의 표현을 살펴보면 보다 더 정확한 의미를 파악할 수 있다. “들보”란 건물의 천장을 받칠 때 사용되는 장선과 같은 커다란 기둥이다. 자기 눈 속에 들보가 있으면서 다른 이의 눈 속에 티를 빼려는 자의 모습을 상상하며 청중들은 웃음을 터트리게 된다. 외식하는 자는 정작 본인도 동일한 잘못을 저지르거나 그보다 더 나쁜 행동을 하면서 다른 이를 비난하는 사람이다. 예수님의 청중에는 이런 위선자 유형의 대표 격인 서기관과 바리새인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들은 못된 관행을 저지르면서도 타인을 비난하는 데 열을 냈다. 이는 비판의 잘못된 예다. 

하나님이 재판장 되심을 기억하면, 우리는 그분의 말씀만이 평가의 기준임을 깨닫게 된다.

그래도 어느 시점에는 누군가를 “비판”하고 도덕적 평가를 내려야 할 때가 있지 않을까? 당연히 그럴 때가 있다. 사실 성경 역시 우리에게 그러한 일을 요구한다.

다른 성경 본문에서 예수님은 “외모로 판단하지 말고 공의의 판단으로 판단하라(요 7:24)”고 말씀하신다. 여기서 “공의의 판단”은 무엇일까? 마태복음에도 죄를 범한 사람을 직접적으로 상대하여 권고하라는 예수님의 가르침이 있다(마 18:15). 이렇게 “공의의 판단”을 가르치는 성경 구절에는 몇 가지 중요한 내용들이 담겨있다.   

첫째, 판단은 반드시 하나님의 기준에 기반해야 한다. 개인 취향으로 사람을 평가해서는 안된다. 하나님의 말씀에 위배될 때만 “죄”라고 부를 수 있다. “비판”에 대한 현대인들의 이의중에 하나는, 그들의 기준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자기만의 진리”를 따라 살아가는 사람들은 그들의 행동을 괜찮다고 생각하고, 그대로 행동하는 상황적 기준에 맞추어 살아간다. “만약 내가 옳다고 생각하고 느끼면, 그게 바로 옳은 것”이라는 주장을 펼친다. 그러나 절대적인 것은 분명 존재한다. 옳고 그름의 절대적 기준이 있으며, 그 기준은 바로 성경 안에 담겨있다. 

둘째, 다른 사람을 권고해야 할 때, 그 동기는 언제나 죄를 지은 사람의 회복에 있다. 범죄한 사람을 대면하는 이유는 그를 묵사발 만들거나, 힐난하거나, 그보다 내가 더 낫다는 우월감을 느끼기 위함이 아니다. 다만 그를 설득하기 위함이다. 이것이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에게 부족했던 점이다. 그리고 우리도 때때로 마찬가지다. 이와 유사한 내용은 갈라디아서 6장 1절에서도 찾을 수 있다. 바울이 기록한다. “형제들아 사람이 만일 무슨 범죄한 일이 드러나거든 신령한 너희는 온유한 심령으로 그러한 자를 바로 잡고 네 자신을 돌아보아 너도 시험을 받을까 두려워하라.” 여기에서 언급하는 “무슨 범죄한 일”도 하나님의 기준에 대한 위반이다. 또한 권고의 목적이 형제 또는 자매의 회복임을 본다. 우리는 언제나 방황하는 이들을 염두에 둬야 한다. 갈라디아서 6장 1절의 또 다른 요지는 타인을 권고하는 자의 태도의 중요성이다. 바울은 “온유한 심령으로” 범죄자가 회복된다고 말한다. 이 말씀은 한 명의 죄인이 다른 죄인을 권고할 때 특징되는 겸손을 알려 준다. 우리는 “네 자신을 돌아보아 너도 시험을 받을까 두려워하라”는 말씀을 함께 새겨 본다. 이러한 자세는 다른 이를 비난하고 자기 자신을 높이려는 독선과는 현저히 다르다.

마지막으로, 이 모든 관점들 속에서, 하나님만이 궁극적인 재판장이시며, 우리는 그분 앞에서 우리의 언행에 대해 답해야 할 책임이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예수님은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너희의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요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니라(마 7:1-2)”고 말씀하셨다. 이 마지막 사안은 사실 우리가 공부한 가장 처음 내용을 지지해준다. 하나님이 재판장 되심을 기억하면 우리는 그분의 말씀만이 평가의 기준임을 깨닫는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겸손의 영을 허락하시어 우리 각자의 마음에 남아있는 위선자의 모습을 깨닫게 하신다.

이 글은 원래 테이블톡 매거진에 게재되었습니다.

티모시 Z. 위트머
티모시 Z. 위트머
티모시 Z. 위트머(Timothy Z. Witmer) 박사는 필라델피아주 뉴홀랜드에 위치한 성 스데반 개혁교회(St. Stephen Reformed Church)의 목사이며, 웨스트민스터 신학교 실천신학 명예 교수이다. 그는 Mindscape의 저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