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위에 기초가 두어진 미래의 칭의? - 리고니어 미니스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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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위에 기초가 두어진 미래의 칭의?

편집자 노트: 이 글은 테이블톡 매거진 시리즈:N.T. 라이트는 뭐라고 말했나?의 다섯번째 글입니다.


“‘ 믿음으로 얻는 칭의’에 관한 사실의 전체적인 요점은 그것이 살아왔던 전체 삶에 근거해서 미래에 선포될 최종적 심판에 대한 적절한 예견으로서(롬 2:1~16) 현세에서 일어나는 일이라는 것이다(롬 3:26).”

–N. T. 라이트, 『톰 라이트의 바울』,

(죠이선교회 역간, 원제: Paul in Fresh Perspective), 57쪽

개신교 칭의 교리를 재구성한 N. T. 라이트의 견해에서 주목할 만한 한 가지 특징은 라이트가 행위를 기초로 한 “미래의 칭의”를 강조한다는 것이다. 라이트에 따르면 사도 바울은 분명히 신자들은 “행위에 따라” 최후의 심판을 받게 된다고 가르친다(롬 14:10~12, 고후 5:10). 라이트의 견해로 보면 행위에 따라 받는 이 미래의 심판은 신자들의 칭의의 종말론적 완성이다.

라이트는 칭의를 하나님의 언약 가족에 속해 있는 자들이 종말론적으로 옳음을 인정받는 일을 포함하여 하나님이 신실하게 자신의 언약을 지키시는 행위로 정의한다. 하나님이 자신의 언약 공동체의 구성원들을 의롭다 하시는 것은, 최후의 심판 때에 주어질 “최종적 칭의”에 대한 예견 가운데 그렇게 하시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칭의가 과거, 현재, 미래의 세 시제 또는 세 단계 안에서 일어남을 인정해야 한다.

과거에 일어난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 사건에서 하나님은 역사가 끝날 때에 자신이 행하실 일을 이미 계시하셨다. “이스라엘의 대표 메시아”로 죽으신 예수님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시는 것으로 하나님에 의해 옳음을 인정받으셨다. 이 그리스도의 부활 사건은 하나님이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곧 아브라함에게 주어진 언약의 약속(“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으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 창 28:14)을 이루실 메시아로 의롭다하신 것을 표상한다.

과거에 그리스도를 의롭다 하신 사건은 믿음을 통해 현재적 실재가 된다. 예수님을 메시아와 주로 믿는 자는 모두 의롭게 된다. 즉 유대인과 이방인으로 함께 구성된 하나의 큰 신앙 가족의 일원으로 하나님께 인정받는다. 칭의의 현재적 실재는 언약 공동체의 멤버쉽에 초점을 두고 있으므로, 그리스도와 연합하는 세례가 이 칭의를 가져오는 현재의 사건이다.

칭의는 이처럼 과거 단계와 현재 단계를 갖고 있지만, 칭의의 주된 단계는 아직 미래에 있다. 최후의 심판 또는 최종적 “칭의”에서 하나님은 자기 백성(아브라함에게 약속된 언약 공동체)에게 무죄 판결을 내리실 것이다. 하나님의 백성의 이 최종적 칭의 또는 옳음을 인정받는 일은 “행위에 따른 칭의”를 포함할 것이다. 라이트는 로마서 2:13을 주석하면서, “마지막 날에 옳음이 입증될(즉 의롭다 함을 받을) 자는 하나님이 그들의 마음과 삶 속에 자신의 율법 곧 자신의 토라를 기록할 자”라고 주장한다. 칭의가 배제되는 “율법의 행위”는 단지 유대인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그러한 표지에 해당한다. 이러한 표지들은 이방인이 언약 공동체의 구성원이 되는 것을 막는다. 그러나 칭의는 믿음의 순종에서 나오는 율법의 행위를 배제하지 않는다.

라이트는 최후의 심판을 신자들의 칭의의 마지막 단계와 동일시하기 때문에, 근본적으로 칭의는 행위나 인간적 행함에 기초가 두어져 있지 않다는 성경의 가르침(롬 3:20, 갈 3:10~14)을 손상시킨다. 역사적 관점에서 보면 라이트의 입장은 중세의 로마 가톨릭 교회의 입장과 다르지 않다. 로마 가톨릭 교회도 종교개혁의 오직 믿음으로 얻는 칭의 교리는 하나님 앞에서 행위에 따라 최종적으로 무죄 판결이 이루어진다는 성경의 주제를 정당화하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라이트가 주장하는 것처럼, 신자들의 칭의가, 의롭다 함을 받은 자들의 행위에 따라 결정되는 최후의 단계 또는 “완성”을 필요로 한다면, 라이트는 믿음을 통해 은혜로 받는 칭의에 행위를 덧붙이는 교리를 가르침이 분명해 보인다.

행위는 신자들의 칭의의 기초에서 완전히 배제된다는 사도 바울의 가르침은 (최종적) 칭의가 궁극적으로 행위에 기초 한다는 관념과 양립할 수 없다. 바울은 칭의를 철저히 종말론적 복으로 간주한다. 곧 칭의를 하나님이 신자들에 관해 선언하는 최종 판결을 결정적으로 그리고 돌이킬 수 없게 예견하는 것으로 본다. 행위에 기초를 둔 최종적 칭의 관념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다는 바울의 주장(롬 8:1)을 불가피하게 약화시킨다. 행위에 기초를 둔 최종적 칭의 관념은 또한 그리스도에게 속한 사람에게는 현재든 장래든 어떤 고발도 있을 수 없다는 바울의 단호한 선언(롬 8:33~34)도 손상시킨다.

우리는 최후의 심판을 신자들의 칭의를 판결하는 또 하나의 단계로 다루어서는 안 된다. 대신 최후의 심판에서 행위의 역할을 강조하는 바울의 요점은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통한 구원에 모든 것이 수반되어 있다고 보는 그의 관점에 따라 파악되어야 한다. 신자들은 그리스도의 영으로 새로워지고 있기 때문에, 최후의 심판에서 주어질 그들의 무죄 판결은 그들의 믿음이 참되다는 것을 공적으로 확증하는 판결이 될 것이며 행위를 기초로 의롭다고 선언하는 판결이 아니다. 물론 신자들은 항상 의로움과 거룩함 둘 다를 위하여 그리스도를 받아들이는 것이므로(고전 1:30) 선행 없이 구원받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이 선행은 믿음의 열매이지, 미래의 칭의의 기초가 아니다. 이런 이유에서 바울은 행위에 “기초하는”(on the basis of) 심판이 아니라 행위에 “따른”(according to) 심판에 대하여 말한다.

그래서 우리는 행위에 따른 최후의 심판과 칭의를 혼동하는 라이트의 견해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리고 청교도 토머스 맨턴(Thomas Manton)이 성경의 지혜를 따라 다음과 같이 말한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믿음의 의로 죄로부터 무죄 판결을 받고[의롭다 함을 받고], 행위의 의로 위선으로부터 무죄 판결을 받는다.” [곧 참된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는 것이 확증된다]. 

이 글은 원래 리고니어 미니스트리 블로그에 게재되었습니다.

코넬리스 베네마
코넬리스 베네마
코넬리스 베네마(Cornelis P. Venema) 박사는 인디애나주 다이어에 있는 Mid-America Reformed Seminary의 교장이자 교수이다. 그는 But for the Grace of God: An Exposition of the Canons of Dort and The Promise of the Future 의 저자이고, 그는 또한 Mid-America Journal of Theology의 공동 편집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