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후서에 대해 알아야 할 세가지
고린도전서에 대해 알아야 할 세가지
2024년 04월 26일
갈라디아서에 대해 알아야 할 세 가지
2024년 04월 26일
고린도전서에 대해 알아야 할 세가지
2024년 04월 26일
갈라디아서에 대해 알아야 할 세 가지
2024년 04월 26일

고린도후서에 대해 알아야 할 세가지


고린도후서는 고린도전서와 마찬가지로 부도덕, 거짓 교사, 종파주의, 신학적 혼란에 빠진 교회의 무수히 많은 문제를 다루고 있다. 이 서신에서는 고린도 교회에 대한 사도 바울의 관심과 배려를 느낄 수 있다. 이 편지의 전반적인 메시지를 이해하고 적용하는 데 도움이 되는 세 가지 중요한 특징을 살펴보자.

1. 고린도후서는 고린도 교회에 대한 바울의 열정과 관심의 정점을 보여준다.

고린도 교회는 AD 52년경 바울의 두 번째 선교 여행 중에 세워졌다(행 18:1-11 ). 누가는 바울이 고린도에 18개월 이상 머물렀다고 말한다. 바울이 고린도를 떠나 안디옥으로 간 직후, 이 교회에 심각한 문제가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 바울은 세 번째 선교 여행 중 에베소에 있을 때 이러한 문제를 알게 되었다(행 19장). 아마도 고린도후서는 바울이 약 2년에 걸쳐 보낸 편지 중 네 번째 편지일 가능성이 높다.

편지 1: “이전”(현존하지 않음) 편지(고전 5:9)

편지 2: 고린도전서

편지 3: “고통스러운” 방문 이후의 “심각한”(현존하지 않음) 편지(고후 2:3-4; 7:8-12 참조)

편지 4: 고린도후서

바울은 디도를 통해 “심각한” 편지를 보냈고, 디도는 교회가 사도와 사도의 가르침을 신실하게 잘 따르고 있다는 기쁜 소식을 가지고 바울에게 돌아왔다. 따라서 고린도후서는 사도와 고린도 신자들 사이의 복잡했던 관계의 “행복한”(완벽하지는 않지만) 정점이라고 할 수 있다. 고린도 교인들의 안녕에 관한 디도의 보고에 바울이 기뻐하는 모습은, 사도가 교회의 삶에서 무엇을 중요하게 여겼는지를 보여준다(고후 7:6-7). 여기에는 교회의 평화, 순결, 일치(교회 권징 포함)는 물론 그리스도인의 윤리적 행동, 겸손, 관대한 청지기 정신이 포함된다. 사도가 교회가 이러한 특징을 소유하고 드러내기를 그토록 염원했다면, 우리도 교회와 그리스도인의 삶에서 이러한 특징이 나타나도록 노력해야 한다.

2. 고린도후서는 바울의 사도 사역을 강력하게 변호한다.

바울은 거짓된 “지극히 크다는 사도”(고후 11:5)들에 맞서, 자신이 부활 승천하신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그분의 이름으로 말하도록 위임받았기 때문에 자신의 사도직이 진정한 사도직임을 입증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고후 5:18, 13:3). 이를 위해 그는 약함과 고난(고후 11:29-30, 고후 12:1-10, 고후 13:4), 새 언약(고후 3), 그리스도인의 섬김(고후 5-6)이라는 폭넓은 주제들을 다루면서 자신의 사도 사역이 주 예수님의 사역과 성품과 일치하며, 세상은 이를 결핍으로 보지만 하나님은 신실함으로 보시는 특징이 있음을 보여준다(이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아래 참조). 바울이 자신의 사도직을 단호하게 지키는 이유는 복음을 단호하게 지키기 위해서였다. 그의 복음이 사실이 아니라면 고린도 교인들은 여전히 죄 가운데 있고 소망이 없는 것이다. 따라서 바울의 방어는 자신의 이미지에 대한 염려보다는 독자에 대한 사랑에서 비롯된 것이다. 바울이 자신의 사도 자격을 변호하는 과정에서 고린도후서를 매우 개인적인 자서전적 서신으로 만들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아마도 신약의 다른 어떤 서신보다 바울과 그가 편지를 쓰고 있는 교회에 대해 더 많이 알 수 있다. 바울은 많은 사람이 생각하는 것처럼 금욕주의자가 아니다. 바울은 섬세하면서도 관대하고, 염려하면서도 자신감이 넘치며, 부드러우면서도 단호하다. 바울은 교회를 사랑하고 복음을 사랑한다. 그는 거짓 교사들이 들어와서 자신의 사도직을 대신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 그는 이제 막 새 신자가 된 이들을 너무 사랑했기에 늑대가 그들을 삼키도록 내버려두지 않았다.

3. 고린도후서는 기독교 사역의 모델이라고 할 수 있다.

교회는 역사적으로 세상적인 성공의 특성을 교회 리더십의 기준으로 삼으려는 유혹을 받아왔다. 오늘날 우리는 종종 크리스천 리더가, 성공한 CEO나 카리스마 넘치는 방송인을 모델로 삼아야 한다고 생각할 때가 있다. 고린도 교인들은 기독교 지도자가 모범적인 헬라 수사학자 같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고린도 교회에 침투한 거짓 사도들은 바울의 고난과 연약함, 웅변적 우아함을 지적하며 사도직에 관한 바울의 주장에 도전하고 있었다. 사실상 그때나 지금이나 권력과 카리스마는 축복받은 복음 사역자의 표식이 될 수 있다. 이러한 거짓 비난에 대해 바울은 실제로 자신의 자격을 내세우지만, 우리가 기대하는 것과는 다르다. 그는 자신과 다른 사도들을 칭찬한다.

우리가 이 직분이 비방을 받지 않게 하려고 무엇에든지 아무에게도 거리끼지 않게 하고 오직 모든 일에 하나님의 일꾼으로 자천하여 많이 견디는 것과 환난과 궁핍과 고난과 매 맞음과 갇힘과 난동과 수고로움과 자지 못함과 먹지 못함 가운데서도 깨끗함과 지식과 오래 참음과 자비함과 성령의 감화와 거짓이 없는 사랑과 진리의 말씀과 하나님의 능력으로 의의 무기를 좌우에 가지고 영광과 욕됨으로 그러했으며 악한 이름과 아름다운 이름으로 그러했느니라 우리는 속이는 자 같으나 참되고 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한 자요 죽은 자 같으나 보라 우리가 살아 있고 징계를 받는 자 같으나 죽임을 당하지 아니하고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고후 6:3-10)

이 이야기는 성공적인 사역에 대한 우리의 암묵적인 모범에 ‘우리는 육신을 따라 사람을 대하고 있지는 않는가?’(고후 5:16)라는 질문을 던진다.  고린도후서는 진정한 기독교 사역은 “거룩함과 진실함”이 특징이며(고후 1:12), 교회 직분자는 자족적이지 않으며(고후 3:5), 사역은 자기를 드러내기보다 자기를 죽이는 것이라고 가르친다(고후 4:11-12). 바울은 또한 고린도 교인들에게 걸림돌이 되고 싶지 않아서 보수를 받지 않기로 했다(고후 11:7-9). 그는 추천서를 가지고 다니지 않았다(고후 3:1-3). 바울은 자신의 사역이나 메시지가 자신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에 간교한 방법(고후 4:2)이나 귀를 간지럽히는 방법을 거부했다(고후 2:17). 새 언약 안에 있는 모든 그리스도의 종들도 마찬가지이다. 교회의 사역자는 교회의 머리이시며 “약하심으로 십자가에 못 박히셨으나 하나님의 능력으로 살아 계신” 그분을 본받아야 한다(고후 13:4).

이 글은 원래 리고니어 미니스트리 블로그에 게재되었습니다. 

애론 게리엇
애론 게리엇
애론 게리옷(Aaron L. Garriott) 목사는 테이블톡 메거진의 편집장이자 플로리다주 샌포드에 있는 레포메이션 바이블 칼리지(Reformation Bible College)의 상주 겸임교수이자 미국장로교(PCA)의 강도장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