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회(catholic)"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거룩”의 의미는 무엇인가?  
2025년 01월 04일
“사도적”이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2025년 01월 18일
“거룩”의 의미는 무엇인가?  
2025년 01월 04일
“사도적”이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2025년 01월 18일

“공회(catholic)”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리스도의 교회는 가장 초기부터 “공회(catholic)”로 묘사되었다. 이 용어는 2세기 초반에서 중반까지 교부로 알려진 이들의 글에 처음 나타난다(안디옥의 이그나티우스, <스머나인들> 8.9; <폴리갑의 순교>, 서문). 이 단어는 헬라어인 ‘카톨리코스(katholikos)’에서 유래되었으며, 이는 ‘전체적으로’ 또는 ‘보편적으로’라는 뜻이며,  초대 교회에서 일반적으로 사용되었다. 그러나, 지금은 ‘카톨릭’이라는 단어는 거의 대부분의 경우에 로마 교회를 일컫는 말이 되었다. 그러나 이 연관성은 역사적으로 비교적 최근에 발전한 것이다. 초대 교회는 이 용어를 동방과 서방 모두를 의미하는 전체 교회에 적용하였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참된 교회, 예수님과 사도들의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는 역사적 연속성을 가진 보편(가톨릭) 교회를 찾고 있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16장 18절에서 “내가 … 내 교회를 세우리니”라고 선언하셨다. 예수님께는 오직 하나의 교회만 있으므로, 보편성(카톨릭)에 관한 질문은 교회의 진정한 본질과 직접적으로 연관되어 있다. 로마와 동방 정교회는 교회를 제도적으로 정의하며, 보편성은 눈에 보이는 기관과의 교제로 이해된다. 반면, 개신교인들은, 전체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교회를 주로 교리적이거나 영적인 용어로 설명한다. 개신교는 보편성이라는 것은 주로 영적인 의미를 나타낸다고 주장한다. 이것은 자연히 보이는 교회와 보이지 않는 교회에 대한 전반적인 질문을 제기하게 된다. 종교개혁자들은 이 구분을 교회론의 중요한 요소로 포함시켰다. 이것은 그저 단순한 변론이었을까, 아니면 정당한 성경적 논쟁이었을까? 종교개혁 이전에 그들의 입장이 공표된 적이 있었는가?

마태복음 16장 16절에서 베드로는 예수님이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했습니다. 예수님은 이에 대해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마 16:18)라고 대답하셨다.  역사적으로 이 구절은 엄청난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개신교가 주장하는 대로 “반석”은 베드로의 고백이며, 그러므로 그것이 그리스도 자신인가? 아니면, 로마 교회가 주장하는 것처럼, 교회는 베드로 위에 세워져서, 그 후에는 로마의 주교들, 즉 베드로의 후계자들 위에 세워졌는가? 예수님이 실제로 무엇을 의미하신 건지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에베소서는 이 구절에 대한 유용한 주석을 제공한다. 에베소서 2장 20절에서 바울은 교회가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잇돌이 되셨느니라”고 말하고 있다. “세우심”에 해당하는 헬라어 단어는 예수께서 마태복음 16:18에서 사용하신 단어와 동일하다. 교회는 어떻게 사도와 예언자 위에 세워졌는가? 그것은 처음에는 그들의 설교를 통해, (행 2:42; 5:42) 그리고 그 후에는 역사적으로 그들의 영감을 받은 저술을 통해 세워졌다. 그들은 복음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 곧 그분의 인격과 사역이 교회의 궁극적인 기초임을 증거했다(고전 3:11). 에베소서 1장 13절에서 바울은 “그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라고 기록하고 있다. 바울은 에베소 교회가 어떻게 세워졌는지 설명한다. 그 과정에서 그는 보편적 교회가 어떻게 세워질 것인지도 설명한다. 복음이 전파되자, 에베소 사람들은 믿음으로 응답했으며 예수 그리스도와의 영적인 연합으로 인치심을 받았다. 그러므로, 교회를 세우는 수단은 사도들의 복음, 즉 오직 은혜로, 오직 믿음을 통해,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을 얻는다는 메시지이다. 이것은 선지자들에 의해 예언되었고, 사도들의 목격담에 의해 증언되었다. 그러므로 마태복음 16장의 반석은 그리스도에 대한 베드로의 고백을 가리키는 것이 틀림없다.

참된 교회의 본질과 보편성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 복음의 우선순위와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바울은 갈라디아 교인들에게 왜곡된 복음을 받아들이고 가르치는 자들은 그리스도를 버리고 하나님의 저주를 받았다고 경고했다(갈 1:6-8). 그들은 진정한 의미에서 보편적인 교회의 일원이 아니었다. 따라서 우리는 성경의 분명한 가르침을 통해 교회는 참된 복음을 받아들이고, 그리스도와 영적으로 연합되어 그분의 몸인 교회의 일원이 된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요 15:4~5, 17:23 ; 롬 12:12~13 ; 엡 1:22~23). 그리고 그것은 영적인 본질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 연합이 눈에 보이지 않는 다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바울은 이스라엘을 예로 들어, 보이는 교회와 보이지 않는 교회의 차이를 설명했다. 눈에 보이는 이스라엘 민족에 속한 사람들 모두가 영적으로 하나님의 왕국에 속한 것은 아니었다(롬 2:28-29; 9:6-7). 성경은 명확하게 말하고 있다. 보이는 교회의 구성원이 예수 그리스도의 보이지 않는 교회의 일원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을 말이다. 무엇보다도 유일하고 참된 교회의 본질은 영적이고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이 영적인 연합이 눈에 보이지 않을지라도, 그 연합 자체는 그리스도와 연합된 모든 사람들의 삶에서 눈에 보이는 모습으로 드러난다. 보편적 교회의 구성원들은 새로운 본성과 변화된 삶으로 나타나며, 이는 복종과 순종, 사랑, 그리고 하나님과 그의 말씀, 특히 복음에 대한 헌신으로 특징지어진다(요 3:3–8; 8:31–32; 롬 6:1–22; 고후 5:17; 갈 1:6–9; 빌 3:3–11; 딛 2:11–14; 요일 2:3–6). 사도 요한은, 신앙을 고백하는 보이는 교회의 정식 회원이라 할지라도, 그들에게 거룩한 삶이 없다면 그리스도와의 연합이 없다고 경고했다(요일 2:3~6; 3:4~10). 예수님 또한 설교와 비유를 통해 비슷한 경고를 하셨다(마 7:13~23, 13:18~30 ; 요 8:30~44). 게다가, 그리스도와 연합한 개개인은 지역 단체로 조직된 가시적인 공동체의 구성원이기도 하다. 이것이 바울이 로마와 고린도, 에베소 교회에 관해 이야기할 수 있었던 이유이다.

예수님께서는 복음을 온 세상에 전파하라고 명령하셨다(마 28:18-20). 유일하고 참된 보편적인 주님의 교회는 모든 문화와 인종, 성별, 사회-정치적 배경을 가진 사람들을 포용한다(엡 2:11-12 ; 골 3:11 ; 히 12:22-23). 그것은 복음을 믿고 순종하는 사람들의 모임이며, 그들의 삶의 거룩함을 통해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증명한다. 이들은 하늘에 있는 완전하고 보편적인 교회를 이루고, 영원토록 하나님과 어린양을 경배하고 섬기며 영광을 돌릴 것이다(계 5:8-14, 22:1-4). 참된 보편성은 본질적으로 제도적인 것이 아니라 영적인 것이다.

보이지 않는 교회에 관한 교리는 종교개혁자들의 새로운 가르침이 아니었다. 초기 교회에서 가장 강력한 지지자 중 한 명은 아우구스티누스였다. 그는 교회가 베드로 위에 세워진 것이 아니라 그의 고백 위에 세워졌으며, 따라서 그것은 그리스도 위에 세워진 것이라고 가르쳤다. “보시다시피 그리스도께서는 한 사람 위에 세워진 것이 아니라 베드로의 고백 위에 교회를 세우셨다.”(설교 229, 1쪽, 성 아우구스티누스 전집, 설교, 제3권 4절)

이 해석은 초기 교부들의 입장을 잘 보여준다. 아우구스티누스는 눈에 보이는 교회에 많은 사람들이 있었지만, 그들이 그리스도를 고백하고, 세례를 받고, 성례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보이지 않는 교회의 회원은 아닌 사람들이 많다고 가르쳤다(요한복음 설교, 논문 27:11; 세례에 대하여, 4권, 3.5장). 아우구스티누스에 따르면, 진정한 교회는 회개하고 믿음을 가진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그들은 그들의 머리인 그리스도와 영적으로 연합되어 있다. 그리고 그들은 그와의 신비한 연합의 증거로서 거룩한 삶을 산다. 그는 변화된 삶으로 나타내지 않는 사람들을, 진정한 기독교인이 아닌, 이름만 기독교인인 사람들이라고 규정했다. 그는 신약 성경의 가라지와 그물, 염소, 알곡과 가라지에 대한 가르침에 호소했다(설교 5.3; 23.4; 88.19; 149.4; 137.9; 패틸리아누스(Petilian)에 대한 답변, 제3권, 2.3장; 시편에 관하여 965.15; 보편 교회의 도덕에 대하여 34.76; 하나님의 도성, 1권, 35장, 교회의 연합에 관하여 34, 35). 그의 논문 ‘믿음과 행위에 관하여(On Faith and Works)’에서 아우구스티누스는 그리스도를 고백하지만, 사실은 진정한 회개가 부족하여 변화된 삶을 만들어내지 못하는 죽은 믿음에 관해 경고했다. 이것은 성례를 무효화한다. 아우구스티누스는 확실히 교회를 가시적이라고 보았지만, 눈에 보이는 교회와 보이지 않는 교회를 명확하게 구분하였다.

보편적 교회의 참된 구성원이 된다는 것은, 하나님께 택하심을 입어 예수 그리스도와 영적으로 연합되고 회심한, 성도들의 존귀한 지체가 된다는 의미이다.  그것은 구속받고, 치유받은 이들, 회복되고, 용서받은 자들의 위대한 회중에 가입하는 것이다. 믿음 없이 고백만 할 수 있는 가능성을 진지하게 고려하면서, 신약성경은 우리가 신앙 안에 있는지, 우리의 부르심과 택하심이 확실한지 우리 자신을 확인하라고 권고한다. (고후 13:5). 우리는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하도록 격려해야 할 도덕적 의무가 있다. 하나의 참된 보편적 교회에 자리를 잡는다는 것은, 눈에 보이는 조직에 가입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와 연합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모든 시대의 성도들과 성경은 “당신은 합당하시니이다 … 당신은 죽임을 당하셨고 당신의 피로 모든 족속과 언어와 백성과 나라에서 사람들을 하나님께 사셨나이다”(계 5:9)라고 선포한다.

이 글은 원래 리고니어 미니스트리 블로그에 게재되었습니다. 

윌리엄 웹스터
윌리엄 웹스터
윌리엄 웹스터(William Webster) 박사는 워싱턴주 배틀그라운드에 위치한 그레이스 바이블 교회의 목사이며, 웹사이트 '크리스천 리소스' (Christian Resources)의 창립자이다. 저서로는 Salvation, the Bible, and Roman Catholicism외 다수가 있다.